깜빡이와 서행 : 도로 위 민폐

by Yong

깜빡이와 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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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사회의 일원이 된다. 그곳에는 말 대신 깜빡이와 경적이 있고, 표정 대신 속도와 간격이 있다. 나는 다년간 운전을 하면서, 깜빡이를 켜지 않거나 지나치게 서행하는 차들을 보며 그 안에 숨겨진 두 가지 극단적인 심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자만감'과 '지나친 자신감 부족'이다.


깜빡이는 대화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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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회전 전용 차선처럼 진로가 정해진 곳에서는 깜빡이를 켜지 않아도 법적으로 무방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켜야 할 곳에서조차 습관적으로 침묵하는 차들이다. 깜빡이는 단순한 전기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의도를 미리 알리겠다"는, 도로 위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대화'다. 그걸 생략하는 순간, 주변 차량들은 그 차가 왜 속도를 줄이는지, 왜 차선을 흔드는지 알 길이 없다. 예고 없는 행동은 연쇄적인 급정거와 사고를 유발할 뿐이다.


나는 이런 운전자들을 크게 두 부류로 본다. 첫 번째는 50대 이상의 운전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운전 달관형'이다. 수십 년 운전 경력에 취해, "내가 알아서 갈 테니 너희가 맞춰라"는 식의 꼰대 같은 태도가 몸에 밴 이들이다. 그들에게 깜빡이는 귀찮은 절차일 뿐이다.


또 다른 부류는 운전이 미숙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운전자들이다. 도로 위에서 흐름과 무관하게 이상한 운전을 하는 이들을 앞질러 보면, 어김없이 핸들을 꽉 쥔 채 정면만 응시하는 운전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어, 깜빡이를 켤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서행이라는 이름의 민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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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서행 역시 이 두 부류로 나뉜다. 자만형 운전자들은 의도적으로 흐름을 방해한다. 특히 소형차를 몰면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듯 창문을 열고 팔을 내놓은 채, 자신만 겨우 신호를 통과하고 뒷 차들은 걸리게 만드는 악의적인 서행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하지만, 그 운전은 비겁하고 유치하다.


반면 자신감 부족형 운전자들은 60km 제한 도로에서 30~40km로 달린다. 그들은 그것이 '안전'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주변 차량들의 급작스러운 추월과 차선 변경을 유발하는, 더 위험한 '민폐'일 뿐이다.


낮은 면허 기준이 만들어낸 도로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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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우리나라의 지나치게 낮은 운전면허 취득 기준에 있다. 독일처럼 수개월간의 훈련과 높은 비용을 요구하며 운전자의 사회적 책임을 각인시키는 나라와 달리, 우리는 너무나 쉽게 면허를 손에 쥔다. 나 역시 20대 때, 필기는 문제집을 한 시간 훑어보고, 실기는 강사와 노닥거리며 배울 정도로 쉽게, 한 번에 면허를 땄다.


이렇게 도로에 나올 준비가 덜 된 운전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니, 불안감에 사로잡혀 도로의 흐름을 깨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사실 도로에 나오기 전에 더 많은 연습을 하는 것이 맞다.

차종이 무엇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운전 경력이 얼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도로 위에서는 그저 운전 매너를 지키면 된다. 나의 상태를 과시하거나 감출 필요 없이, 그저 깜빡이를 켜고 도로의 흐름에 맞게 달리면 된다. 그것이 도로 위 모든 구성원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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