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동경을 유행으로, 유행을 소비로 바꾸는 연금술
2010년대 중반, 한국에는 바이오, 뷰티, 가상코인 같은 키워드가 불러온 투자 열풍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미래 성장 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사이 제대로 성장한 기업도 있었지만, 투자자를 현혹해 돈만 빼돌리는 세력도 넘쳐났다.
그들이 가장 자주 쓰던 무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셀럽과의 친분”이었다.
국내외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 허울 좋은 해외 기관과의 ‘공식 협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동 왕족과의 인맥’ 같은 장식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피드에는 왕실 공주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올라오고, 캡션에는 “곧 중동 자금이 들어온다”는 암시가 붙었다. 결국 사진과 스토리가 곧 투자 신뢰의 인증마크였다.
나는 그 시절 다단계 사기꾼과 기업사냥꾼, 주가조작 세력을 추적하며 확인했다. 호텔 로비 한쪽에서 속삭이던 미팅,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서 오가는 약속, 투자설명회 무대에서 터져 나오던 허풍 섞인 장담들. 그 본질은 똑같았다. 허울뿐인 이미지가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신뢰가 곧 거액의 돈으로 바뀌는 순간을...
실제 중동 왕실 인맥이라 해도 대개는 후순위 출신이었고, 오히려 자신의 ‘브랜드’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셀럽·왕실은 언제나 최고의 마케팅 카드였다.
흥미로운 건 이런 방식이 결코 새로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 셀럽 마케팅의 원조, 왕실 인플루언서들
오늘날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브랜드를 홍보하는 방식의 원조는 사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차를 유럽 전역에 퍼뜨리기 위해 당시 가장 강력한 ‘왕실 인플루언서’였던 왕비와 공주들을 무대 위로 불러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단순히 찻잎만 팔지 않았다. 그들은 차를 “몸에 좋은 신비의 동양 음료”라 포지셔닝하며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들었다. 두통, 불면, 장수, 심지어 자궁 건강에 좋다는 메시지를 덧붙이고, 여기에 중국에서 들여온 고급 다기와 찻잔을 곁들였다.
마치 오늘날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에 ‘건강·웰니스·라이프스타일’ 콘셉트로 콘텐츠를 올리고, 명품 컵이나 티웨어를 협찬 사진에 넣는 방식과 같았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궁정의 상류층 귀부인들은 곧 ‘최초의 팔로워’가 됐다. 그들은 손님을 맞으며 티타임을 열었고, 그 장면은 주변 상류층 여성들에게 ‘버킷리스트 콘텐츠’처럼 소비되었다.
#티타임, 최초의 SNS 바이럴
1662년,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가 영국 찰스 2세에게 시집 오며 차 문화는 런던으로 본격 유입됐다. 그녀는 값비싼 차와 설탕, 동양 다기를 배에 가득 싣고 와 곧장 궁정에서 티파티를 열었다. 영국 귀부인들은 너도나도 그 장면을 모방하며 차를 따라 마셨다.
1689년, 메리 2세는 또 다른 방식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였다. 그녀는 화려한 연출 대신, 햄프턴 코트에서 조용히 도자기를 진열하고 차를 즐겼다. 오히려 그 절제된 이미지가 진정성 있는 ‘브랜딩’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상류층 전체에 차 예절이 정착됐다.
# 브랜드 스토어, 포트넘&메이슨과 트와이닝스
1706년, 런던에 차 전문점 트와이닝스가 문을 열었다. 이는 남성 전용 커피하우스에서 한계를 깨닫고, 여성 고객도 자유롭게 ‘팔로우’할 수 있는 매장으로 전환한 혁신이었다. 마치 오늘날 특정 브랜드가 인스타그램 숍을 열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럭셔리”를 표방한 것과 같았다.
1707년에는 포트넘&메이슨이 등장했다. 앤 여왕의 하인이었던 윌리엄 포트넘은 왕실에서 남은 양초를 재활용해 자본을 마련했고, 곧 왕실 납품이라는 신뢰를 무기로 고급 고객과 중산층을 동시에 끌어들였다. 이후 그들은 찻잎뿐 아니라 설탕·다기·향신료까지 ‘원스톱 패키지’를 팔며 차 문화를 확산시켰다. 이는 지금의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통해 생활 전반의 라이프스타일 패키지를 제안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 셀럽 마케팅의 마법, SNS로 이어지다
1740년대 이후 손잡이가 달린 찻잔이 보급되며 티타임은 더 간편해졌다. 산업혁명과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까지 맞물리자, 차는 귀족의 상징이 아니라 중산층이 교양과 취향을 드러내는 일상 콘텐츠가 됐다.
이처럼 차는 왕실이라는 레갈리아(왕실 인증), 과시재(지위 과시), 사치품(부의 상징)을 거쳐, 결국 중산층이 즐기는 일상재로 확산됐다. 오늘날 인스타그램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셀럽의 일상 콘텐츠”를 통해 대중화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몇백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을 본다.
2010년대 한국 투자 시장에서 본 풍경도 마찬가지다. 왕실과 셀럽의 사진 한 장이 투자자의 지갑을 열었던 것처럼, 지금도 인스타그램 피드 속 셀럽의 한 장면은 소비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리고 2020년대,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숏폼 플랫폼은 셀럽뿐 아니라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까지 무대를 확장했다. 팔로워 수만이 아니라 ‘공감과 진정성’이 화폐처럼 작동하며, 라이프스타일 한 컷이 전 세계 소비자 행동을 바꾸는 시대다.
왕실이 즐기던 음료가 서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것처럼, 셀럽의 라이프스타일은 팔로워의 소비 습관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열망을 정확히 겨냥했던 것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였고, 오늘날 기업들이 반복하는 전략이다.
무대는 궁정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매체는 티타임에서 피드로, 그리고 지금은 릴스로 바뀌었을 뿐. 셀럽 마케팅의 연금술은 여전히 진화하며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