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아오스의 천구도
14세기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오컴이 제시한 유명한 사고의 원칙으로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라는 이론이 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이론이 있다면, 더 적은 가정을 하는 단순한 쪽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원리다.
오컴의 면도날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전제 조건들을 베어내라고 요구한다.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예외 조항을 필요로 한다면, 그 이론의 핵심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장황한 덧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뺄셈의 과정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발굽 소리를 들으면, 얼룩말이 아니라 그냥 말을 생각하라." 의대생들이 진단 방법을 배울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격언이라고 한다.
1940년대 후반,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의 저명한 내과 교수 시어도어 우드워드 박사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데리고 병실을 회진하며 환자들을 진단하는 임상 교육으로 명성이 높았다.
어느 날, 우드워드 박사와 제자들이 고열과 두통, 심한 기침을 호소하는 환자를 마주했다. 젊은 인턴 한 명이 환자의 차트를 보며 의욕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시작했다.
"환자의 증상은 최근 의학 저널에 실린 'Q열'의 초기 증상과 유사합니다. 아프리카 수면병이나 라임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희귀 혈관염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드워드 박사는 나지막이 되물었다. "여기 메릴랜드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면, 그냥 말(Horse)인가, 아니면 얼룩말(Zebra)인가?"
환자의 증상을 설명하는 데 추가적인 가정이 거의 필요 없는, "지금은 겨울이고, 주변에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는 가장 흔한 질병(독감)을 먼저 의심하라는 것이다.
고대인이 보기에, 발밑의 땅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고, 하늘의 모든 것은 어김없이 우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어떤 감각적 증거도 없었다.
기원 100년경 그리스 수학자겸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각자의 궤도를 돈다는 천구도를 제작했다. 이것이 천동설이다.
여기에, 유럽의 기독교 세계관은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지구 중심론에 신학적 권위를 더했다.
그런데, 이 천구도 자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들이 하늘을 돈다는 잘못된 가정하에 기반하고 있어, 행성들의 실제 움직임을 지금처럼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화성이 가끔 오던 길을 뒤돌아 가는 역행운동을 설명하는 것은 최대 난제였다.
현대과학으로 살펴보자면, 화성은 지구 바깥 궤도를 돌기 때문에 안쪽의 지구가 더 빠르게 돌면서 약 2년 2개월마다 화성을 추월하게 된다.
마치 고속도로의 빠른 추월차가 보기에 저속 차량은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화성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지구에서 보기에 화성은 약 72일간 역행하다가 작은 원을 그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은 원을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이라고 불렀다.
즉, 고대 천구도는 모든 행성이 ‘이심원(離心圓)’이라는 본 궤도를 돌다가, 지구가 추월하는 순간부터 본 궤도 위에서 작은 주전원을 돌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행성들이 원이 아닌 타원궤도를 돌기 때문에 주전원이 발생하는 위치가 매번 달라지게 되자 이를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 위에 또 다른 주전원을 추가하며 복잡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도는 지동설이 확립되기까지 약 1,400년간 세상을 지배했다.
이는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주전원을 붙여가며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최선의 결과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잘못된 확신 위에서, 그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정교한 계산을 할수록 우주는 더욱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운 괴물이 되어갔다.
이는, 천동설이라는 주어진 패러다임을 비판하기보다는, 복잡한 주전원을 통해 기존 원리의 예측력을 높이려는 ‘모르는 자들의 최선’이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19세기 중반 유럽 의학계는 콜레라나 산욕열 같은 전염병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아니라, 썩은 유기물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이론이었고, 당대 최고의 의사들이 신봉하는 '과학적 상식'이었다.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의 창문을 닫아 '나쁜 공기'를 막고, 악취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등 효과 없는 조치에만 집중했다.
이때, 헝가리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시체를 부검한 뒤 손을 씻지 않고 산모를 진료할 때 산욕열 사망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손만 잘 씻어도 산모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주장했지만, 동료 의사들은 "신사인 의사의 손이 더러울 리 없다"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사후 파스퇴르가 '세균설'을 증명하면서 그의 주장은 진실로 밝혀졌다.
당시 의사들의 문제는 "병의 원인은 나쁜 공기"라고 '확실히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손을 씻으라는 간단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데 있었던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천문학자들은 자신들이 우주의 비밀을 ‘확실히 안다’고 믿었다.
그 잘못된 확신이 너무나 견고했기에, 그들은 반대되는 증거 앞에서 진실을 탐구하기보다 주전원이라는 복잡한 장치를 동원해 자신들의 착각을 방어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무지는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잘못된 확신은 진실을 향한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 믿음, 가치가 일관되기를 바란다.
만약 믿음과 현실 사이에 모순(부조화)이 생기면, 우리는 이 불편한 느낌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바꾸거나, 행동을 바꾸거나, 혹은 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믿음에 끼워 맞춘다고 한다.
흡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는 믿음과 ‘나는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행동 사이에는 극심한 부조화가 발생한다.
이때 가장 쉬운(?) 해결책은 금연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택한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이만한 게 없어”, “우리 할아버지는 평생 피우셨는데 90세 넘게 까지 사셨어”와 같은 합리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기 위해 덧붙이는 ‘심리적 주전원’이다.
그렇다면, 나의 주전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의 ‘고집’ 일 수 있다. 또,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우리의 ‘핑계’ 일 수 있다. 혹은 우리의 잘못된 ‘습관’, 경도된 생각과 사상 일 수도 있다.
주전원을 없애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핵심 믿음, 즉 ‘나는 옳다’는 중심적인 전제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00년간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봤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당신의 우주를 복잡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주전원은 무엇인가? 지금이 바로 그것을 오컴의 면도날로 과감히 잘라낼 가장 빠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