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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도를 바꾸는 힘, 스윙바이

Swing - By

by 김대군

지렛대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설 곳만 달라, 그러면 지구라도 들어 보이겠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도시 국가였던 시라쿠사의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한 말이다.


아르키메데스는 히에론 왕에게 기계학의 원리를 설명하며,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적절한 장치만 있다면 상상할 수 없이 무거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왕은 많은 화물을 실은 채 해변에 끌어올려져, 수백 명의 힘으로도 꿈쩍 않던 거대한 배를 아르키메데스에게 움직여 보라고 명했다.


아르키메데스는 해변으로 가서 복합 도르래와 밧줄, 그리고 여러 개의 지렛대로 이루어진 정교한 기계 장치를 설치했다.


복합 도르래는 지렛대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힘의 크기를 몇십, 몇백 배로 증폭시키는 장치다.


그는 왕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계의 한쪽 끝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배를 바다에 띄웠다.


오늘날 이 명언과 일화는 ‘레버리지(Leverage) 효과’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비유로 널리 쓰인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핵심적인 도구, 기술, 자본, 아이디어, 시스템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하면 몇 배, 몇십 배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아르키메데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지렛대와 도르래는 단순히 힘을 쓰는 쇠막대기가 아니라, 인생의 궤도를 바꿔줄 증폭 장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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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도움닫기 스윙바이(Swing-by)



우주 탐사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천문학적인 거리와 그 거리를 이동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양의 연료다.


현재의 로켓 기술로는 탐사선을 목성 근처까지 보내는 것이 한계에 가깝다고 한다.


스윙바이는 바로 이 근본적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탐사선이 행성이나 위성과 같은 천체의 중력을 차용(借用)해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다.


이는 마치 빠르게 굴러가는 볼링공(행성)에 탁구공(탐사선)을 던져 맞출 때, 탁구공이 볼링공의 운동 에너지를 일부 전달받아 더 빠르게 튕겨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즉, 탐사선은 목표 행성의 중력장 안으로 진입하여 행성의 공전 방향을 따라 함께 돌며 강력한 에너지를 전달받는다.


이후 계산된 시점에 행성의 궤도에서 튕겨져 나오듯 빠져나오면서 엄청난 가속을 얻는다.


반대로 행성의 공전 방향과 반대로 진입하면 속도를 크게 줄이는 감속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는, 행성의 중력이라는 ‘무료 에너지’를 활용하여 최소한의 연료로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가는 심우주 탐사의 필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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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선불폰 | 태블릿2676189 네이버 블로그 2024.09.10. 스윙바이(Swing-by)란 무엇인가?



1977년 발사된 보이저 2호는 176년에 한 번 찾아오는 외행성들의 특별한 정렬 기회를 활용하여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차례로 스윙바이하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완수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해왕성까지 약 30년이 걸렸을 여정은 12년으로 단축되었다.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을 항해하는 보이저 호의 장대한 여정은, 스윙바이라는 우주적 지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1997년 발사된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는 금성(2회), 지구(1회), 목성(1회)을 차례로 스윙바이하며 속도를 높여 2004년 토성 궤도에 도착했다.


한편, 태양처럼 중력이 강한 천체에 접근하려면 속도를 충분히 줄여야 한다.


2004년 발사된 수성 탐사선 메신저호는 지구, 금성(2회), 수성(3회)을 이용한 총 6번의 스윙바이를 통해 속도를 충분히 줄인 후에야 수성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스윙바이


1489년경, 피렌체의 통치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는 자신이 아끼는 예술품을 모아둔 정원을 예술 학교처럼 개방했다.


어느 날 로렌초가 이 정원에서 한 소년이 대리석을 깎아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파우누스(Faunus, 목신)'의 머리를 조각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4세의 미켈란젤로였다.


"파우누스는 늙은 신인데, 어찌 이빨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가지런하단 말이냐?"


미켈란젤로는 로렌초가 자리를 뜨자, 파우누스의 입을 쪼아 이빨 하나를 부러뜨리고, 마치 이가 빠진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며칠 뒤, 로렌초가 이 소년의 열정과 천재성을 보고,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와 아들처럼 살게 했다.


미켈란젤로는 로렌초가 사망할 때까지 3년간 그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동석한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철학자, 시인들의 고견을 청취하면서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피에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같은 불멸의 걸작들을 남겼다.


로렌초라는 위대한 후원가는 10대 소년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그에게 '인문학적 사유'와 '고전의 깊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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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누스의 머리 조각상 원본은 사라졌다.

미술이야기 5: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34 [출처] 미술이야기 5: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34|작성자 똘이아빠 네이버블로그




1993년, J.K. 롤링(J.K. Rowling)은 이혼 후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정부 생활 보조금으로 겨우 생활하는 가난한 무명작가였다.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글쓰기였다.


그녀는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에든버러의 작은 카페(특히 '니콜슨스 카페')에 앉아, 난방비를 아끼며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미친 듯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원고를 써 내려갔다.


1995년 마침내 소설을 완성했지만, 당장 다음 달 생활비와 딸의 기저귀 값을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때 J.K. 롤링은 자신의 삶을 바꿀 중요한 결심을 하는데. 바로 '스코틀랜드 예술 위원회'에 작가 지원금을 신청한 것이다.


결국, J.K. 롤링은 8,000파운드(당시 한화 약 1,200만 원)의 지원금을 지원받았다.


J.K. 롤링은 이 지원금을 발판 삼아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수많은 거절 끝에 마침내 '블룸스버리(Bloomsbury)' 출판사와 계약하였다.


"그 돈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돈이 가져다준 가장 큰 것은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강의 물고기 들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오른다.


중국 황하강 상류의 등용문(登龍門) 이야기는 평범한 잉어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폭포를 차고 올라 용으로 변모하는 극적인 도약의 서사다.


그러나, 성공하는 잉어는 극소수이고 나머지는 폭포수 밑으로 떨어져 상처를 받는다.


이 끊어진 생명의 길을 잇기 위해 ‘물고기 다리’, 즉 어도(魚道)를 설치해 준다.


물고기 다리는 완만하게 지그재그로 이어진 등산로나 계단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통로 내부에 여러 개의 칸막이와 쉴 수 있는 공간을 두어, 물고기들이 거친 물살을 피해 점진적으로 높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도는 강 전체의 건강성과 생물 다양성을 회복시킨다. 거대한 장벽 앞에 막혀 선 존재에게 우회하는 길과 점진적인 희망계단을 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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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어도

By I, Tony in Devon,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492982 출처 위키백과




‘인생의 스윙바이’는 때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전체 항로를 바꾸는 ‘거대한 행성’과의 조우로 찾아올 수도 있다.


한 분야의 대가나 인생의 스승 같은 멘토는 우리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행성이다.


때로는 우연히 만난 한 권이나 영화 한 편, 또는 종교와의 만남이 내면의 우주에 빅뱅을 일으키기도 한다.


장학금, 창업자금, 채무조정, 긴급복지지원 등 각종 금융지원 역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강력한 로켓 부스터다.


거대한 스윙바이가 인생의 극적인 도약을 이끈다면, ‘물고기 다리’는 모두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작은 스윙바이인 셈이다.




우리는 서로의 지렛대



유튜브는 서버 비용이나 송출 비용 없이, 누구나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콘텐츠를 방송할 수 있게 해 준다.


크리에이터는 이 플랫폼을 발판 삼아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1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유튜브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지 않지만,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콘텐츠 자체가 유튜브의 자산이 된다.


더 많은 크리에이터가 성공할수록, 더 많은 시청자가 플랫폼으로 모여들고, 유튜브는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얻게 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수많은 개인들이 스윙바이할 수 있는 거대한 중력장 즉, 지렛대를 제공한다.



우리의 삶 역시 광활한 미지의 우주를 항해하는 한 척의 우주선과 같다.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며 나아가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2023년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나의 노력’이 계층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25.2%였다. 또,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은 28.1%로 조사됐다.


사회적 상승 사다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사회는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때 누가 나에게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스윙바이 할 수 있는 작은 행성이 되어줄 수 있다.


길을 묻는 이에게 친절히 답해주고, 후배의 고민을 잠시 들어주며, 동네의 작은 가게를 기꺼이 이용하는 그 사소한 듯한 행위들이 바로 이 사회의 중력장을 따뜻하게 만드는 ‘작은 지렛대’이다.


나는 내 인생의 도약을 위해 어떤 스윙바이를 만나고, 찾아 나설 것인가.


더 나아가, 나는 다른 이들의 고단한 항해에 어떤 종류의 ‘행성’이 되어줄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서로를 스윙바이 해줄 행성이 될 때, 사회는 희망이 가득찬 우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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