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과 월식
그림자의 가장 원초적인 역할은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쨍한 햇살이 작열하는 한여름,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서늘한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순간, 그림자는 너그러운 품이 된다.
우리가 만나는 가장 큰 그림자는 바로 ‘밤’이다. 밤은 지구가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이며,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공평하고 절대적인 휴식의 시간이다.
고요한 밤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하늘의 별을 보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렘브란트는 “나는 그림자를 그리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은 모든 것을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림자의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 존재한다.
빛이 인물의 이마와 콧등을 비추고 지나갈 때, 그 빛을 받아 더욱 깊어진 눈가의 그림자와 옷깃의 어둠 속에서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짐작하게 한다.
렘브란트는 빛으로 그림자를 조각함으로써 인물의 고뇌와 연민, 회한과 지혜 같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감정들을 표현해 낸다.
그림자는 그의 캔버스 위에서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공간이 된다.
빛이 외면을 비춘다면, 그림자는 내면을 품는다.
우리는 빛 속에서 살아가고, 영혼은 그림자 속에서 깊어 간다.
By 렘브란트 - http://hdl.handle.net/10934/RM0001.COLLECT.5216,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9589409 출처 위키백과
지구는 태양을 돌고, 달은 지구를 돈다.
이 끊임없는 춤사위 속에서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놓일 때 일식과 월식이라는 멋진 우주 쇼가 펼쳐진다.
일식은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쏙 들어와 달이 태양을 가려 그 그림자가 지구를 덮는 현상이다.
개기일식은 지구가 달의 새까만 본그림자 안에 완전히 들어갔을 때 볼 수 있는 최고의 우주 쇼다.
대낮인 데도 별이 보일 정도다.
이때 달의 그림자는 시속 1,700km가 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 표면을 스쳐 지나간다.
따라서,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시간은 2~6분 정도로 아주 짧다.
부분일식은 지구가 달의 옅은 그림자에 있을 때 일어나며, 마치 달이 태양을 한입 베어 문 것처럼 보인다.
금환일식은 달이 지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생긴다. 이때는 태양을 전부 가리지 못하고, 테두리가 금반지처럼 빛나는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월식은 반대로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들어가 지구의 거대한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현상이다.
월식은 보름달이 뜰 때 일어나며, 지구의 그림자가 워낙 커서 통상 2시간에서 4시간 동안 지속되어 일식보다 훨씬 오랫동안 볼 수 있다.
개기월식은 달 전체가 지구의 새까만 본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현상이다.
그런데 달이 깜깜하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신비로운 붉은빛을 띤다.
태양 빛이 지구를 지날 때, 지구의 대기가 마치 필터처럼 파란빛은 흩어버리고 붉은빛만 통과시킨다.
이 붉은빛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살짝 휘어져 들어가 달을 비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붉은 노을을 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부분월식은 달의 일부만 지구 본그림자에 가려져, 달의 한쪽이 어둡게 보이는 현상이다.
By Sergei Mutovkin from Irvine, California, United States - Full Eclipse of the Moon as seen in from Irvine, CA, USA,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8047426
출처 위키백과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천구(天狗) 즉 '하늘의 개'가 태양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일식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 개를 쫓아내기 위해 냄비와 솥을 두드리고, 북을 치고, 폭죽을 터뜨리며 엄청난 소음을 일으켰다.
이는 공포에 질려 고함을 지르는 것과 유사하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거대한 늑대 '스콜'이 끊임없이 태양을 뒤쫓다가 마침내 태양을 따라잡아 삼켜버리는 순간이 바로 일식이다.
태양이 영원히 잡아 먹히면 세상은 빛을 잃고 종말이 온다고 예언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궁정 천문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일식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만약 일식을 예측하지 못하면 왕이 하늘의 경고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천문학자가 처형당하기도 했다.
반대로 일식을 예측하면 '대리 왕'을 잠시 세워 액운을 그에게 떠넘기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성경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는 말처럼, 우리를 미신과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계산한 로켓이 정확한 궤도를 따라 날아올라 달에 착륙하는 순간, 우리는 환호한다.
이는 인간 지성이 쌓아 올린 ‘계산된 앎’이 현실에서 완벽하게 구현되는 것을 목격하는 즐거움이다.
이제 사람들은 일식의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계산된 하늘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식 관광’이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들었다.
일식 관광은 ‘경험’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트렌드의 한 사례이며, 관련한 새로운 경제를 만들기도 한다.
2009년 7월 22일 일식은 방글라데시 등 적도 부근은 개기일식이, 한국에서는 부분일식이 있었다.
일식을 악마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기는 힌두교 신자들은 이 날 갠지스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날 인도 바라나시 에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들어, 1명이 죽고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중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미신을 타파하는 등 과학 교육을 실시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대한민국은 일식 장면을 인터넷 생중계할 계획이었으나, 접속자들이 너무 많아 중계가 취소되기도 했다.
By Bluerasberry - 자작,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371463 출처 위키백과
지난 2017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작은 마을은 일식 덕분에 수천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누렸다.
호텔은 만실이 되고, 레스토랑은 ‘코로나 버거’ 같은 특별 메뉴를 내놓으며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기에, 지역 정부는 교통을 통제하고 안전을 관리하며, 음악 공연과 강연이 어우러진 ‘일식 페스티벌’을 열어 방문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2026년의 유럽 일식은 아이슬란드의 빙하, 스페인의 해변에서 펼쳐질 낭만적인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또, 2027년 이집트의 ‘세기의 일식’은 6분이 넘는 경이로운 지속 시간으로,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서 역사와 우주가 만나는 장관이 펼쳐질 예정이다.
2028년 호주 일식은 시드니 도심 한복판에서 즐기는 도시형 일식 축제가 기대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개기일식은 없지만, 아주 중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2035년 9월 2일 개기일식은, 무려 148년 만에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개기일식이다.
북한지역에서는 평양, 남한에서는 강원도 고성 일부 지역에서 약 1분 40초간 관측 가능하다고 한다.
서울과 판문점 등 지역에서도 태양의 96% 이상이 가려져 하늘이 어두워지는 부분 일식이 두 시간 이상 지속될 예정이다.
2041년 10월 25일 금환일식 때는 서울을 포함한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금반지’ 모양의 태양을 볼 수 있다.
2035년은 우리나라 일식 관측의 중요한 해가 될 수도 있다.
분단된 남북한이 이 우주 쇼를 계기로 평화적인 관광 상품을 함께 개발할 수도 있다.
나아가, 남북정상이 판문점 등에서 함께 일식을 바라보며 평화를 다지는 계기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태양 빛이 가려지는 자연현상을 계기로 남북한 간에 짙게 드리워진 분단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멋진 평화의 잔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하늘의 드라마를 즐기는 동반자이다.
국적, 인종, 계급을 넘어 모두가 함께 탄성을 지르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된다.
분단된 한반도 역시 이 경이로움을 세계와 함께 나누며 평화의 새 역사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위대한 교훈이자 선물일 것이다.
By Henrik Ishihara Globaljuggler - 자작,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898553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