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쓰루 스타샷 프로젝트
인류의 역사는 곧 속도(Speed) 개선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빨리 소식을 전하고, 더 빨리 물자를 옮기려는 욕망은 문명을 탄생시킨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
13세기,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약 40km 간격으로 '얌'이라는 역참(驛站)을 설치하고, 이곳에 말과 보급품을 항상 준비해 두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몽골의 정보는 하루에 300km 이상 이동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유럽의 전령보다 5~6배나 빨랐다.
얌은 제국의 영토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신경망'이었다.
‘마력(馬力) 시대’의 속도는 인간 도보 속도인 시속 5~10km를 뛰어넘는 30~50km였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런던, 브리스톨, 맨체스터 등 각 도시가 저마다 태양의 위치에 따른 '자신들만의 시간'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런던이 정오일 때 브리스톨은 오전 11시 50분이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차가 나오자, 이런 식으로는 정확한 열차 운행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영국의 철도 회사들은 1840년, 모든 역의 시계를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시간에 맞추는 '철도 시간'을 도입했다.
이것이 바로 '표준시'의 시작이다.
철도의 스피드는 전국의 시간을 하나로 통일시키며 '약속'과 '일정'이라는 현대적 시간 개념을 탄생시켰다.
‘기계 시대’의 속도는 시속 50~100km였다.
영국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 천문대. 그리니치 자오선을 나타내는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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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20세기 제트 엔진의 발명은 속도의 개념을 '빠름'에서 '돌파'로 바꾸었다.
비행기는 음속의 장벽을 넘어섰으며, 지구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좁혔다.
‘초음속 시대’의 속도는 시속 100km ~ 2,000km 이상이며, 현재 활동 중인 우주탐사선들은 시속 55.000km(초속 15km) 이상으로 비행 중이다.
인류의 마지막 속도 혁명은 물리적인 이동이 아닌, '정보의 이동'에서 일어났다.
전신, 전화, 라디오를 거쳐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마침내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빛의 속도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흐르면서 심리적, 경제적 거리는 사실상 '0'이 되었고, 실시간으로 글로벌 소통을 하는 '지구촌'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 스피드는 세상을 지배한다.
느림의 미학은 더 이상 빨리 갈 수 없을 때나 하는 말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별은 약 4.2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터우리’이다.
프록시마는 라틴어로 가장 가깝다는 말이다.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마치 담장 너머 바로 옆집처럼 가깝지만,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수만 년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까마득한 거리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이 별은 센터우르스 자리의 다른 두 개의 더 큰 별과 함께 중력으로 묶인 '삼중성계'의 일원이다.
이 별의 질량은 태양의 약 12.5%에 불과하고, 밝기는 0.0056%에 그치는 작고 어두운 별(적색왜성)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알파센타우리(왼쪽 밝은 별)와 오른쪽의 베타센타우리 중간 아래쪽에 프록시마 센타우리(붉은 원)가 있다.
By 영어 위키백과의 Skatebiker,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833562 출처 위키 백과
그런데, 2016년,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공전하는 외계행성 '프록시마 b'를 발견했다.
이 발견이 특별한 이유는 이 행성이 '생명체 거주 가능 구역’(골디락스 존) 안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 구역은 지구처럼 행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는 영역을 의미한다.
프록시마 b는 지구보다 약간 클 정도이며, 단단한 표면을 가진 암석형 행성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생명의 요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준다.
프록시마 b는 모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1년이 지구 시간으로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특히, 가까이 있는 모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매우 변덕스러워 강력한 ‘플레어’(태양풍)를 주기적으로 내뿜고 있다.
이 치명적인 방사선은 행성의 대기를 벗겨내고 표면의 유기물을 파괴할 수 있다.
프록시마 b에 과연 이 모든 위협을 막아줄 두꺼운 대기와 강력한 자기장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별에 가고자 한다.
만일 프록시마 b에서 우리 태양을 본다면 카시오페아 자리에 근접한 밝은 별로 보이게 된다.
By FrancescoA - Celestia 1.4.1.,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686124 출처 위키백과
러시아 출신의 억만장자 유리 밀너(Yuri Milner)는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투자자이다.
밀너는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우주선인 보이저 1호조차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7만 5천 년이 걸린다는 사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한 사람의 생애안에 다른 별에 도달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마침내 2016년 4월 유리 밀너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뉴욕에서 '브레이크스루 스타샷(Breakthrough Starshot)'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 계획의 목표는 수천 개의 초소형 탐사선을 빛의 속도 20%(초속 6만 km)까지 가속시켜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보내는 것이다.
이 엄청난 속도 덕분에 4.24광년의 거리를 단 20여 년 만에 주파할 수 있으며, 계획대로 2036년에 발사된다면 2060년경에 인류는 사상 최초로 외계 행성의 근접 사진을 받아보게 된다.
스타샷은 세 가지 혁신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먼저, 우표 크기의 작은 칩(무게 1g)에 카메라, 통신, 항법 장치 등 모든 기능을 집적한 초소형 탐사선 ‘스타칩(StarChip)’을 만든다.
이 스타칩에 빛을 매우 효과적으로 반사하는 수 미터 크기의 얇고 가벼운 돛 ‘라이트세일 (Lightsail)’을 부착한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설치된 거대한 레이저 기지에서 강력한 레이저 빔을 우주 공간의 라이트세일에 집중적으로 쏘아, 그 빛의 압력으로 마치 바람이 돛단배를 밀어주듯 탐사선을 가속시키는 원리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했지만, 반도체 기술과 나노 기술, 그리고 레이저 기술의 세 가지 핵심 기술의 발전 덕분에 실현 가능성의 문이 열리고 있다.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개념도 (출처=Tamil Astronomy)
[ET시론]K스페이스와 스타샷 프로젝트
발행일 : 2024-10-09 16:00 지면 : 2024-10-10 25면 (전자신문)
1865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은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거대한 대포를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이 탄 포탄(우주선)을 쏘아 올려 달에 보냈다.
그로부터 104년 뒤인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며 닐 암스트롱이 첫발을 내디뎠다.
쥘 베른은 우주선을 쏘아 올릴 최적의 장소로, 적도에 가까워 원심력을 이용할 수 있는 '플로리다'를 선택했는데, 아폴로 우주선이 발사된 곳도 플로리다의 '케이프 커내버럴(케네디 우주 센터)'였다.
또, 베른의 소설 속 우주선 이름은 '콜럼비아드(Columbiad)'였고,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이름이 '컬럼비아(Columbia)'였으며, 탑승 우주비행사 역시 3명씩이다.
쥘 베른의 소설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과학적 추론에 기반한 미래의 청사진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 SF TV 시리즈인 <스타트렉(Star Trek)>에서 커크 선장은 손바닥만 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의 뚜껑을 열어 승무원들과 즉시 음성 및 영상 통화를 했다.
또한 승무원들은 ’ 패드(PADD)'라는 얇은 평판 형태의 기기로 데이터를 읽고 서명을 했다.
인류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모토로라 DynaTAC)를 개발한 엔지니어 마틴 쿠퍼는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이 사용하는 커뮤니케이터를 보고 '저거다!'라고 생각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특히 1996년에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끈 모토로라의 플립형 휴대전화 '스타택(StarTAC)'은 그 이름부터 스타트렉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많은 언론과 팬들은 "마침내 스타트랙의 패드가 현실이 되었다"며 흥분했다.
2000년대 초,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설립하며 "로켓을 발사한 뒤 다시 착륙시켜 재사용하겠다"고 말했을 때, 전 세계 항공 우주 산업계는 이를 비웃었다.
NASA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은 로켓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상식이며, 수직 착륙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경제성도 없는 공상이라고 치부했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라는 거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재사용'이 필수적이라 믿었고, 수많은 실패 끝에 2015년 12월, 팰컨 9 로켓 1단계 추진체가 지상에 수직으로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로켓 발사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아졌고,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이었던 일이 지금은 일상적인 뉴스가 되었다.
2015년 12월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되는 팰컨 9
By Joel Kowsky - https://www.flickr.com/photos/nasahqphoto/49953835192/in/photostream/,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0808271 출처 위키백과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현재 알고 이해하는 것에 한정되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끌어안고, 미래에 우리가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빛으로도 프록시마 센터우리까지 4년 4월이, 북극성까지는 433년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는 250만 년이 걸린다.
그러나, 상상력은 1초면 족하다. 상상력은 빛보다 빠르다.
우리는 모두 빛보다 빠른 상상력을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일단 상상하자, 상상하면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