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인의 어깨 위에서 사색하다

뉴턴의 만유인력

by 김대군

사색(思索)


아이작 뉴턴이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니던 1665년 흑사병이 대 유행하여 대학이 문을 닫자, 고향인 울즈소프의 한적한 시골 농가로 돌아갔다.


이 완벽한 18개월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상태는 간섭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그는 고향 집 정원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고, 정원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했다.


또, 자신의 방을 암실로 만들고, 창문에 작은 구멍을 뚫어, 한 줄기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는 실험에 몰두하며 의 본질을 파헤쳤다.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하기 위해, 몇 주간을 방에 틀어박혀 연구한 끝에 완전히 새로운 수학인 미적분학을 만들어냈다.


?src=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4801_000_1%2F20170302113500865_A4BVJ8312.jpg%2Fcd6_53_i2.jpg%3Ftype%3Dm4500_4500_fst&type=sc960_832

뉴턴이 프리즘을 통해 빛을 분리해내고 있다.

https://search.pstatic.net/common/?src=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4801_000_1%2F20170302113500865_A4BVJ8312.jpg%2Fcd6_53_i2.jpg%3Ftype%3Dm4500_4500_fst&type=sc960_832Tterms.naver.com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40세부터 남해의 강진에서 18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죄인인 그에게 아무도 방을 내주지 않아, 주막집의 허름한 골방을 빌려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짓고 거기서 머물렀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 즉,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이 그것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천연두로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자, 중국의 최신 의학서인 <종두방>등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천연두의 예방과 치료법을 집대성한 <마과회통(麻科會通)> 을 저술했다.


또, 갓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세금을 물리는 '황구첨정 (黃口簽丁)'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라를 바로 세울 방법이 무얼까?”라는 현실문제 해결방안 찾기에 몰두했다.


다산은 이 18년의 고독 속에서, <목민심서>(지방관의 실무 지침서), <경세유표>(국가 시스템 개혁서), <흠흠신서> (형법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책을 썼다.


1x640_1543829539.jpg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하였다

https://www.gangjin.go.kr/culture/build/images/1543/15438295/1543829539.jpg/1x640x85/1x640_1543829539.jpg 출처 강진군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거나 일시적으로 일을 쉬게 되었다.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뉴턴이 '중력'을 사색했듯, 자신의 ''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나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이 '집단적 사색'의 결과, 사람들이 연봉이나 안정성보다 삶의 질, 워라밸, 정신 건강을 우선시하며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거대한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전 지구적 재난이 개인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사색할 시간을 준 것이었다.


2021년 ‘텍사스 A&M 대학교’의 경영학 교수인 앤서니 클로츠(Anthony Klotz)는 이현상을 '대사직 시대(The Great Resignation)'라고 불렀다.




F=MA와 만유인력


뉴턴이 발견한 ‘F=MA’와 ‘만유인력’은 물체의 움직임과 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부터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까지, 세상의 모든 움직임 속에는 질서와 법칙이 숨어 있다.


먼저, F=ma는 힘이 ‘어떻게’ 운동을 만드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세상 모든 움직임의 ‘문법’과 같다.


이 공식이 말하는 것은, 어떤 물체에 힘을 가하면(F), 그 물체는 속도가 변하게 되는데(a), 이때 변화하는 정도는 물체의 무게, 즉 질량(m)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가벼운 자전거는 살짝만 밀어도 쉽게 속도가 붙지만, 무거운 자동차는 훨씬 더 큰 힘을 주어야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그 힘이 ‘무엇’인지, ‘어디서 오는지’는 설명하는 것이다.


뉴턴은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단순히 ‘왜 떨어지는가?’를 넘어, “사과를 당기는 저 힘이 혹시 저 하늘의 달까지 미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우주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의 정체 즉,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 냈다.


만유인력의 법칙의 공식은 F = G × (m₁ × m₂) / r²이다.


이 법칙은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며, 그 힘(F)은 두 물체의 무게가 클수록 더 커지고, 두 물체 사이 거리(r)가 가까울수록 제곱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만유인력의 발견은 사과 한 알과 저 멀리 행성을 움직이는 힘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만유인력 법칙은 F=ma 공식 속 ‘F(힘)’를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F)은 만유인력 공식을 통해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계산된 힘(F)이 바로 F=ma 공식에 들어가, 사과가 어떤 가속도(a)로 떨어지는지를 알려준다.


즉, 만유인력이 힘의 ‘원인’을 규명한다면, F=ma는 그 힘의 ‘결과’인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두 법칙의 결합을 통해 우리는 행성의 궤도를 정확히 예측하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옆 사람이나 책상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전혀 느끼지 못할까?


그 이유는 만유인력 상수 G(약 6.674 ×10⁻¹¹ N·m²/kg²)의 값이 매우 작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물체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미미하여 거의 ‘0’에 가깝다.


만유인력이 ‘의미 있는’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천체의 지름이 약 400km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따뜻한 마음은 작을지라도 주변 사람을 끌어당긴다. 사람도 만유인력이 있다.



거인의 어깨


1676년, 뉴턴은 라이벌이었던 물리학자 로버트 훅에게 보낸 대답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만약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12세기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 (Bernard of Chartres)가 남긴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뉴턴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경구가 되었다.


‘거인의 어깨’란 바로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 올린 지식의 축적을 의미한다.


뉴턴의 눈부신 성취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케플러의 행성운동 3법칙, 갈릴레이의 천체 관측과 같은 거인들이 기록으로 남겨준 유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새로운 천재는 뉴턴의 어깨를 빌려, 인류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


과학의 역사는 이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서 또 다른 거인이 탄생하는 가장 극적인 무대이다.


한편,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의 지식은 소수의 위대한 거인들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되었다.


위키피디아, 인공지능(AI)의 오픈 소스 운동 등은 수많은 ‘난쟁이’들이 서로 어깨를 내어주며 함께 거대한 지식의 탑을 쌓아 올리는 새로운 모델이다.


이는 지식의 발전 속도를 가속화하고,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융합과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라는 검색 엔진의 검색창 바로 아래에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모토가 적혀 있다.


새로운 논문을 쓰려는 과학자는, 구글 스칼라를 통해 먼저 이 주제에 대해 연구했던 '거인들'의 논문을 보고 그들의 어깨를 딛고, 새로운 발견을 추가하라는 것이다.


진정한 진보는 뉴턴이 사과의 '추락'에서 달의 '궤도'를 보았듯, 거인의 어깨를 딛고 자기만의 새로운 궤도를 그려 나가는 창조적 행위일 것이다.



광기(狂氣)


16세기 후반 튀르키예 지역에서 유럽으로 수입된 튤립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전 세계 무역을 장악한 '황금시대'를 누리고 있었고, 튤립의 소유는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그중, '줄무늬 튤립'은 꽃잎에 불꽃이 튀는 듯한 복잡하고 화려한 줄무늬가 생긴 변종으로, 이 무늬가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나 희소성이 극도로 높았다.


이 무늬는 사실 '튤립 깨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튤립을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구근을 약하게 만들어 번식을 어렵게 했고, 이는 희소성을 높였다.


튤립은 씨앗에서 꽃이 피기까지 7년 이상 걸렸고, 구근(알뿌리)을 옮겨 심는 것도 1년 중 여름에만 가능했다.


사람들은 이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고, "내년에 수확될 튤립 구근을 미리 사겠다"는 선물거래가 시작되었다.


종이쪽지에 적힌 '미래의 튤립 권리'를 서로에게 더 비싼 값에 떠넘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투기는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되었다.


1634년부터 시작된 투기 광풍은 1637년 초에 절정 달했으며, 농부, 하인까지 전 재산을 팔아 튤립 구근 한 알에 '올인'했다.


당시 가장 비쌌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라는 품종의 구근 단 한 알이 암스테르담의 고급 저택 한 채 가격과 맞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1637년 2월 3일, 튤립 경매에서 처음으로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고, 소문이 퍼지자 시장은 즉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어제까지 집 한 채 값이었던 튤립 구근을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고, 가격은 수직 낙하했으며, 빚을 내어 샀던 사람들의 손에는 가격이 0이 되어버린 계약서만 남았다.


IMG_3677.jpg?type=w3840

[출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이 집 한 채 값이라고? <The Great Tulip Trade> 3월 도서|작성자 영등포 GT・ 2024. 2. 19




18세기 초 영국, '남해 회사(South Sea Company)'는 영국 정부의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 대가로, 남아메리카와의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문제는 이 무역이 스페인과의 전쟁 등으로 인해 사실상 거의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였지만, 회사는 언론 플레이와 로비를 통해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 것처럼 포장했다.


1720년, 영국 전역은 이 주식에 대한 투기 광풍에 휩싸였고, 전 국민이 빚을 내어 "묻지 마 투자"에 뛰어들었다.


주가는 몇 달 만에 10배 이상 폭등하며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냈다.


당시 아이작 뉴턴은 영국 왕립 조폐국장(Master of the Mint)을 지내며 국가의 재정을 관리했고, 이미 상당한 부를 축적한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뉴턴은 1720년 초 남해 회사 주식에 투자하여, 주가가 적당히 올랐을 때 매도하여, 약 7,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수십억 원)라는 상당한 차익을 실현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주가는 미친 듯이 폭등했고, 지인들이 그가 판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사서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을 목격했다.


뉴턴은 이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을 이기지 못하고, 이미 최고점에 다다른 주식을 이전에 투자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금액으로 다시 사들였다.


주가는 1720년 말에 폭락을 거듭하며 휴지 조각이 되었고, 뉴턴은 무려 2만 파운드(현재가치로 약 수백억)라는 거액을 잃었다.


이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측정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포모’ (FOMO, Fear Of Missing Out)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작에는 언제나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원초적인 공포, ‘포모’가 자리하고 있다.


이 소외에 대한 두려움은 한 시대의 가장 현명한 이성마저 마비시켰다.


경제든 사상이든 그 무엇이든 포모에 휩싸이면 ‘광기’라는 거인의 발 밑을 어슬렁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색은 역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낳지만, 포모에 휩싸인 광기는 자신과 사회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사색하고 있는가, 아니면 광기의 발밑에서 포모에 휩쓸리고 있는가? '뉴턴식 거래'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자.



apples-4747096_1280.jpg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