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가 부르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가 있다. 별이 반짝이듯 사랑했던 추억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보낸다는 이별노래다.
그렇다, 우주에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인 블랙홀이 있고, 그 외곽의 경계선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한다.
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서 블랙홀로 들어서면 빛도, 사랑의 추억도, 그 무엇도 되돌아 나올 수 없다. 그것은 우주의 '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그리고, 우리 현실의 삶도 사건의 지평선 같은 경계선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 강둑에 서서 넘을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한번 넘으면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선택은 무겁다.
동양 고전 『주역』은 바로 이 선택의 순간에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지혜를 준다. 이 말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즉, 어떤 준비를 하고 경계를 넘어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실천 철학이다.
하늘의 모든 별은 그 나름의 수명이 있다. 우리 태양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약 50억 년 후에는 태양도 수명을 다한다.
태양보다 10배 이상 매우 무거운 별이 수명을 다하면, 엄청난 자체 중력 때문에 안쪽으로 한없이 쪼그라들면서 뭉쳐 저서 블랙홀이 된다.
이때 별의 모든 물질이 아주 작은 점(특이점)으로 압축된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빛의 진로를 휘게 만들 만큼 강력하게 안으로 끌어당기는 '중력 공간'이 생긴다.
블랙홀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중력공간 안쪽에서 블랙홀 주위를 둘러싼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선에 있다.
이 경계는 밖에서 안으로는 들어갈 수 있지만, 안에서 밖으로는 어떤 물질이나 빛, 정보도 빠져나올 수 없다. 일방향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우주의 경계인 것이다.
만약 우주선이 사건의 지평선에 접근한다면, 엄청난 중력에 의해 선체가 국수처럼 길게 늘어나다가 결국 원자 단위로 분해되는 ‘스파게티화 현상’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물리적 형태 자체가 완전히 해체되고 소멸되는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바깥세상과의 모든 연결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의 지평선은 소멸선인 동시에, 그 안쪽 세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한 새로운 물리학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창조의 시발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블랙홀은 과학자들의 계산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주변 별들의 움직임을 통해 그 존재를 추측할 수 있을 뿐,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2019년, 전 세계의 전파 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이 마침내 블랙홀의 ‘그림자’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물체가 내놓는 빛을 찍는 것이다. 따라서, 빛을 내놓지 않고 삼키는 블랙홀 자체를 사진으로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발상을 전환했다. 블랙홀의 실루엣을 찍기로 한 것이다.
환한 모닥불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그 검은 윤곽은 뚜렷하게 보인다. 블랙홀도 주변의 밝은 가스 원반(강착 원반)을 배경으로 그 중심의 어두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마침내, EHT는 우리 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 주변에서 맹렬히 빛나는 가스를 배경으로, 그 한가운데에 있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그로써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건의 지평선 역시 확인된 것이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f/Black_hole_-_Messier_87.jpg/500px-Black_hole_-_Messier_87.jpg 출처 위키백과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 사진》
100년 전 아인슈타인은 거대한 질량(블랙홀 같은 물체) 주변의 시간과 공간이 극단적으로 휘어져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경계가 생길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이 물체의 강력한 중력은 빛의 경로를 휘게 만들어, 중심의 검은 그림자를 감싸는 밝은 빛의 고리 형태가 나타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그가 옳았음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결코 볼 수 없는 것’의 존재를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통해 증명함으로써, 우리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우주의 심연, 그 ‘돌아올 수 없는 강’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첫 번째 세대가 된 것이다.
인간의 삶과 인류의 역사에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같은, 한번 건너면 되돌아 나오기 어려운 수많은 경계의 강이 존재해 왔다.
특히나,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수시로 크고 작은 사건의 지평선 앞에 선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사표를 던지는 결단, 모든 것을 걸고 창업에 뛰어드는 용기,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이라는 서약,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직을 감행하는 모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유학, 타국으로의 이민, 한 아이의 입양, 정치적 출마, 그리고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 ‘영끌’ 투자까지...
나아가, 타국과의 전쟁이나 기업의 M&A 등도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큰 경계의 강이 된다.
각각의 사안에는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수많은 방법서들이 존재한다. 커리어 컨설턴트는 이직의 타이밍을, M&A 전문가는 인수합병의 리스크를, 국제정치학자는 참전의 명분을 분석한다.
또, 종교와 신의 뜻을 들으려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점을 보기도 한다. 어느 방법이 특별히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더 바르지 않겠는가.
『주역』 역시 문제해결의 하나의 방법론일 수 있다. 그렇다고 21세기의 세상사를 기원 한참 전에 만들어진 주역에 깊게 의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사건의 지평선 앞에 서서 큰 변화를 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주역』이 말하는 ‘이섭대천’의 지혜가 효용성이 큰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다.
『주역』 64괘 전체에서 ‘강을 건너는 상황’은 총 일곱번 등장한다. 그중 여섯 번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涉大川)”고 말하며 도전을 권하고, 한 번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지 않다(不利涉大川)”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주역』이 무작정 모험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 건너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분별하는 상황적 지혜를 중시한다는 뜻이다.
‘이섭대천’의 결단은 현재의 익숙함이나 곤경에서 벗어나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는 변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꿰뚫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보고 있다.
우주에 있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어떤 대상도 소멸시키는 차가운 물리 법칙의 경계이다.
하지만 이섭대천의 강 앞에서는 불확실성과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결단의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성공하여 새로운 땅을 얻을 수도 있고, 실패하여 모든 것을 잃고 블랙홀의 심연 속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주역』은 그 결단이 ‘이롭기(利)’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자기 성찰의 과정을 강조한다. 그 과정은 지혜에 기반한 용기를 얻기위한 다섯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나는 준비되었는가?’(내적 역량). 『주역』에서는 산이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역량이 크게 축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山天大畜: 산천대축).
강을 건너고 싶은 열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건널 수 있는 능력, 지혜, 경험이 갖춰졌는지를 먼저 묻는다. 다가올 고난을 감당할 정신적 각오와 인내심, 그리고 건강 상태까지 포함한 근본적인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강은 기회가 아니라 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시의성). 하늘에 구름이 가득 하나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표현한다(水天需: 수천수).
즉,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어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결단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시대의 흐름, 민심의 방향, 조직의 분위기가 나의 결단에 순풍이 될지 역풍이 될지를 판단해야 한다.
훌륭한 배와 선장이 있어도 폭풍우 속으로 출항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큰 전진이 될 수 있다.
셋째, ‘그 길은 정당한가?’ 왜 그 강을 건너려 하는가?(명분). 바람이 산기슭에 막혀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그릇 안에 벌레가 생겨 부패한 상황이다(山風蠱: 산풍고).
따라서. 오랫동안 부패하고 망가진 것을 바로잡는 어려운 과업을 의미한다.
정당한 명분은 사람들을 모으고, 보이지 않는 도움을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명분이 없는 출정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 민심을 잃게 된다.
넷째, ‘함께할 동료가 있는가?’(협력). 정의로운 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하늘의 뜻 아래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天火同人: 천화동인).
거대하고 위험한 과업은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여기에는 비밀스러운 결탁이 아닌 공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이리하여 공동의 목표와 집단적 역량이 있다면 어떠한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
『주역』이 여섯 번이나 ‘이섭대천’을 권하면서도, 유일하게 다툼과 갈등을 상징하는 괘(天水訟: 천수송)에서는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지 않다(不利涉大川)”고 경고한다.
내부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도전은, 선원들끼리 싸우는 배를 타고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훌륭한 선장에게는 그를 믿고 따르는 유능한 선원들이 필요하다. 나의 결단이 고립된 외침이 아니라, 신뢰로 뭉친 합창이 될 수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다섯째, ‘강 너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비전). 바람이 물 위를 불어 안개를 흩어버리고 물결을 일으키는 모습이다(風水渙: 풍수환). 이는 지도자가 막혔던 것들을 흩어 버리고 혼란의 상황을 풀어내는 것을 상징한다.
단순히 현재가 싫어서 떠나는 ‘도피’와,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강 너머에 무엇을 만들 것인지, 어떤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있는가?
짙은 안갯속을 항해할 때, 명확한 목표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이처럼 ‘이섭대천’의 판단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준비된 내가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함께할 동료들과 올바른 때를 만나,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종합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 '강 넘기'는 ‘이롭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생과 역사의 수많은 ‘사건의 지평선’ 앞에서 어떤 이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영웅이 되고, 어떤 이는 블랙홀의 미지의 심연 속으로 스러져 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왕건: 복하(福河)를 건너 통일을 이루다》
925년,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눈앞에 둔 고려 태조 왕건은 남천주(현 이천)에서 거센 복하(福河)를 마주했다.
이 지역 일화에 따르면, 고뇌하던 왕건은 주역점을 쳐 ‘이섭대천(利涉大川)’의 답을 받아 들고, 결단을 내려 복하를 건너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 지명을 이천(利川)이라고 개명했다는 것이다.
왕건의 성공은 이섭대천의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강 건너기의 모범사례에 해당한다.(박종기 교수의 저서 『고려사의 재발견』등 참조)
먼저, 왕건은 궁예 휘하에서부터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전략가였다. 특히 후백제의 배후지인 나주를 장악하여 서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등 강 너머의 혼돈을 수습할 실질적인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930년 고창 전투의 대승으로 후백제의 기세를 꺾어 민심의 흐름을 가져왔고, 935년에는 신라가 스스로 항복하고 후백제에 내분이 일어나는 등 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최적의 때가 도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열된 국토를 통일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거대한 명분은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세율을 낮추는 민생 안정책과 신라에 대한 우호 정책은 지방 호족과 유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왕건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적을 동지로 만드는 포용력이었다. 유금필, 신숭겸과 같은 충성스럽고 유능한 부하들의 헌신은 물론, 유력 호족들과의 결혼 정책(29번)을 폈다. 고려에 귀부 한 이들에 대한 기득권 인정은 물론, 최대의 적이었던 견훤이 귀순하자 '상부(尙父)'극진히 대우했다.
그의 결단은 고립된 외침이 아니라 신뢰로 뭉친 강력한 연합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합창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표는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훈요 10조』로 국가 운영의 원칙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통일 국가 고려’라는 명확한 청사진이 있었다. 이 뚜렷한 비전은 불확실한 통일 과정 속에서 고려라는 배가 나아갈 방향을 밝혀주는 분명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카이사르: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얻다》
기원전 49년, 갈리아를 정복한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강, 루비콘 앞에 섰다.
강 너머에는 정적들이 장악한 로마가 있었고,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는 것은 공화정에 대한 반역이자 모든 것을 건 내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그의 외침과 함께 감행된 이 도하는, ‘이섭대천’의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등 참조)
그는 8년간의 갈리아 전쟁을 통해 단련된 로마 최고의 명장이었다. 여기에 13군단이라는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최정예 군단과 안토니우스 같은 유능한 부하가 있었다. 전쟁할 자격을 갖춘 셈이다.
당시 로마 공화정은 원로원 귀족들의 부패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부패한 원로원으로부터 로마 공화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 정당성은 그의 군단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로마 시민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의 정적인 폼페이우스의 주력 군단은 멀리 스페인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최후통첩이 떨어지자 한겨울이라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루비콘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 이는 정적들이 제대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이탈리아 반도를 별 저항 없이 장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강 너머의 비효율적인 공화정을 넘어 강력하고 안정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는 명확한 청사진이 있었다. 이 비전이 훗날 로마 제정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우아한 형제들(배달의민족): ‘전화 주문’의 낡은 강을 건너다》
2010년, ‘우아한 형제들’ 앞에는 “배달 음식은 전단지를 보고 전화로 시키는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오래된 생각의 강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IT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자영업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설득의 강이 있었다.
그들은 이 두 개의 강을 건너기 위해 이섭대천의 지혜를 매우 잘 구현했던 것 같다.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EO’의 영상, 2019년 11월 등 참조)
우선,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자인'을 핵심 역량으로 삼았다. B급 감성의 유머러스한 문구,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직관적인 앱 디자인은 초기 앱 시장에서 단연 돋보였고, 이는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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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머니투데이 서진욱 sjw@mt.co.k
무엇보다도, 2010년은 대한민국에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오프라인(전단지)에서 모바일(앱)로 급격히 이동하던 시대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닻을 내린 것이다.
이 완벽한 타이밍과 더불어, 2019년부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그들의 작은 배는 거대한 함대처럼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명분은 단순히 ‘주문 중개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낙후된 배달 산업을 혁신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소비자에게는 흩어져 있던 음식점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편리한 주문 경험을 준다. 리뷰 시스템을 통해 음식점 사장님들에게는 광고비 경쟁이 아닌 맛과 서비스로 승부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가졌다.
또, 그들은 음식점 사장님들을 플랫폼을 함께 만들어갈 중요한 파트너로 여겼다. 초기에는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사장님들을 설득했고, ‘배민아카데미’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
이를 통해 소비자와 음식점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집단을 성공적으로 연결하는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끝으로, 그들의 목표는 ‘전단지 모음 앱’이 아니었다. ‘음식 주문부터 결제, 리뷰, 배달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대한민국 1등 푸드테크 플랫폼’이라는 명확한 청사진이 있었다. 이 뚜렷한 비전은 훗날 B마트(퀵커머스), 배민라이더스(배달 대행), 서빙 로봇 등 배달 산업 생태계 전체를 혁신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네만강을 건너 ‘동장군’에 지다》
1812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의 네만강을 건넌 것은 그의 몰락을 재촉한 치명적인 ‘이섭대천’의 실패였다.(애덤 자모이스키, 『1812, 운명의 겨울』 등 참조)
그의 군대는 당대 최강이었고(내적 역량), 유럽 통일이라는 비전도 명확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조건들을 간과했다.
우선, 나폴레옹은 그의 막강한 군을 믿고 단기전을 예측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와 후퇴하며 모든 것을 불태우는 '초토화 전술'은 전쟁을 길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얇은 옷을 입고 출발한 그의 군대는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 즉 '동장군'이라는 최악의 '때'를 맞아 괴멸되었다.
길어지는 보급선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러시아의 초토화 전술로 현지 조달은 불가능했고, 본국에서의 보급은 너무 멀어 끊기기 일쑤였다. 식인행위나 자기들 간의 약탈이 벌어지는 등 협력 체계가 붕괴되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전파하던 초기의 전쟁들과 달리, 나폴레옹의 패권 유지를 위한 명분 없는 침략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이는 러시아 민중의 '조국전쟁' 참전이라는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나폴레옹의 군대는 모든 러시아 군대와 민중을 적으로 돌려야 했다.
결국 그의 위대한 프랑스 대 육군인 '그랑드 아르메'는 모스크바의 잿더미 속에서 얼어붙었고, 나폴레옹은 성공의 정점에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의 강 건너기는 지혜가 결여된 오만의 비극이었다.
《탄금대 전투: 배수진이라는 이름의 잘못 건넌 강》
1592년 임진왜란 초기, 조선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신립 장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충주로 급파되었다.
그는 조령(鳥嶺)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포기하고, 기병을 활용하기 좋다는 이유로 남한강을 등진 탄금대 앞 평야에 1만 6천 병사와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이는 후퇴 없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는 극단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 결단은 '이섭대천'의 조건을 무시한 치명적인 실수였다.(유성룡의 『징비록』등 참조)
신립은 자신이 이끄는 조선 최정예 약 5,000여 기병을 믿었지만, 나머지 병사들은 대부분 급하게 징집된 훈련되지 않은 농민들이었다. 또한, 일본군의 조총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당시 조선군은 연전 연패하며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고, 일본군은 승승장구하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이미 연이은 패배로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배수진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기보다,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는 절망감이 앞섰을 것이다.
부장 김여물 등이 험준한 조령에서 싸워야 한다고 간언 했지만, 신립은 이를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의 목표는 오직 '적을 격파한다'는 단기적인 군사 목표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패배했을 경우의 차선책이나 장기적인 전략(비전)이 전무했다. 배수진은 성공하면 영웅, 실패하면 전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결국, 훈련이 잘 안 된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 사격과 3면 포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퇴로가 막힌 병사들 대부분은 남한강에 뛰어들었으나 익사했다고 한다. 신립 장군도 말을 몰고 강에 뛰어들어 최후를 맞았다.
《대우그룹: ‘세계경영’의 강을 건너려다 IMF에 당하다》
1990년대 ‘세계경영’을 내걸었던 대우그룹의 몰락은 현대 기업사에 남은 가장 극적인 ‘이섭대천’ 실패 사례다.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다’는 명분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비전은 원대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조건들이 빠져 있었다.
우선, 과도한 차입 경영으로 재무 구조가 극도로 취약했다. 이는 강을 건널 배 자체가 부실했다는 의미로, 결정적인 내적 역량의 부재였다.
특히나, 가장 공격적으로 확장을 감행하던 시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이라는 최악의 시의성이었다. 결국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는 내실이 부족했던 대우라는 배를 가장 먼저 집어삼켰다.
대우의 사례는 아무리 훌륭한 명분과 비전이라는 돛을 달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튼튼한 선체가 없거나 시기가 맞지 않을 경우 ‘이섭대천’은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것이 우주적 소멸이라면, 이섭대천의 강을 건너는 것은 낡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창조적 과정이다.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과 경계 너머의 미지를 향한 동경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섭대천의 다섯 가지 물음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나침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지혜로운 결단을 통해 미지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