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 감(感)은 읽지 못한다
AI를 ‘제2의 비서’처럼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정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다룬 것처럼, 입법은 물론 홍보·분석·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는 이미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AI를 쓰면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관점을 접하거나, 내 생각을 더 깊이 확장할 수 있는 질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AI는 과연 직접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정치는 감(感)이다.” 흔히 정무감각이라고 부른다. 정무감각은 단순히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조직을 원만하게 이끄는 능력, 동호회에서 싸움 없이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 집안에서 가족 간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 모두가 일종의 정무감각이다.
유력 정치인이라고 모두 이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대선 잠룡으로 잘 나가다가 발언 한 번 실수해서 정계은퇴하는 사람도 많고, 누가봐도 아니다 싶은 의제에 집착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분들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있던 감이 사라지는 분도 있으시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무감각은 눈치가 빠른 것과 유사하지만 단순히 분위기를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황을 읽고 때를 맞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정무감각이다.
정무감각은 뛰어난 정보력을 기반으로 한다. 뉴스, 유튜브, 커뮤니티, SNS 등 수없이 많은 출처에서 쏟아지는 정보들. 거기에 보안 정보부터 사람들간의 관계, 소문과 찌라시들까지 감안하여 관계와 상황을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국 대중이 선택하는 정치에서는 여론과 최대한 가까운 정보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정보, 과장된 정보는 걸러야겠지만, 듣고 싶은 정보만 들어서도 안된다. 그런데 권력을 가지면 그게 쉽지가 않나보다. 서울에서만 들리는 풍문, 여의도에서만 도는 소문, 국회 담벼락 안에서만 속닥대는 찌라시로는 대중의 흐름을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물론 AI가 직접 회의에 들어와 결정을 내리지는 않지만, AI는 그동안 인류가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왔다. 뉴스, SNS, 영상, 커뮤니티, 통계자료는 물론이고 대중의 여론까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규모의 정보를 선별·해석하는 능력은 이미 전문가를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는, 정보와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상황 판단에서 AI가 상당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라는 질문에 99%의 확률로 답을 내놓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나머지 1%다. 이른바 ‘식스센스’라 불리는 직감이다.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감(感)말이다. 정치인의 직감은 생각보다 무섭다.
예전에 모 캠프에서 이런 직감의 존재를 깨달은 적이 있다. 기자든, 실무자든, 여론조사 마저도 큰 표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당연히 이길 것을 점치던 캠프의 실무자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후보와 함께 시장을 돌고 온 핵심 보좌관이 찜찜한 표정으로 전략을 바꿔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분명히 반기는 지지자들을 만나 웃음 가득한 일정을 보냈음에도 보좌관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이유는 그냥 개인의 기분이었지만, 너무나도 강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전략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터, 결과는 10%차 패배였다.
이 감각은 데이터와 분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설명조차 불가능하다. 차라리 무속이나 야생본능과 가깝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이 직감이 없으면 정치인은 패배한다. AI가 넘보기 힘든 벽이다.
AI는 이미 정치인들의 촉을 99%까지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정치는 수학이 아니라 사람의 세계다. 인간의 감정, 돌발 변수,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승패를 가른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정치인의 눈을 넓혀주지만, 정치의 마지막 한 끗은 여전히 인간의 직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감이 살아 있는 한, 정치인은 단순한 알고리즘을 넘어서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