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된 것을 불러낸 사악한 정치의 마음
형형색색의 옷을 걸치고 짤랑이는 방울을 흔드는 무속인들. 취업, 연애, 결혼, 자식들 대학 입학까지 물어보려 유명한 무당의 점집에는 1년도 넘는 예약이 밀려있다고 한다. 세상이 살기 팍팍하고, 매일이 불안할수록 다가올 미래를 엿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천기누설을 들으러 점집으로 향한다.
물론, 그 사람들 사이에는 정치인들도 껴있다. 몇 천만원짜리 굿판은 물론, 아무개 정치인은 점집으로 향햐는 길을 닦기 위해 예산을 썼다는 소문도 있다. 요즘 뉴스에서도 빠지지 않는 정치인과 무속, 정말 정치인들은 무속인의 말에 따라 정치를 하는 걸까?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원 할 것 없이 무속에 의지하는 정치인은 의외로 많다. 지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적힌 ‘王’ 자가 무속과 관련되었다는 말이 아마 가장 최근일 것이다. 과거에는 국가 사업에 무속적 의미를 담은 ‘오방색’이 동원됐다며 논란이 일기도 했고, 도사가 국가 개발사업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여럿 떠돌았다.
일하면서 무속인을 찾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더 많이 들었다. 심지어 중요한 시점에 보좌관의 조언보다 무속인의 말을 더 중히 듣는 이도 있다. 출마 선언 날짜를 무속인에게 받아오는 건 예삿일이고, 무슨 연설문을 무속인에게 검수를 맡긴다거나, 선거때 슬로건을 무속인에게 물어본다던가 하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도 많다. 출근 때마다 문지방을 밟는다던가, 무속인의 말에 따라 특이한 루틴을 가진 정치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한국인은 무속에 꽤 친숙하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녀 대학 입시 앞두고 점집에 들르는 경우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큰 일을 앞두고 무속인을 찾아서 조언을 듣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꽤나 일상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인이 무속인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께름칙하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무속에 의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0.73%—지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후보의 표 차.
0.15%—지난 지방선거에서 김동연과 김은혜 후보의 표 차.
여론조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세한 결과다. 아무리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도, 선거는 바람 한 번에 뒤집히곤 한다. 유권자들의 선택도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다. 바보같지만 순박하다고 끌리고, 나쁘지만 똑똑해서 끌리기도 한다.
그런 예측불가능 때문인지 1~2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후보와 실무자 모두 엄청 불안하다. 그래서 작은 위협이라도 피하고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점집을 찾는다.
무속인들조차 “선거 결과는 국민이, 곧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며 속단을 경계한다. 선거는 국민이 정하고, 이는 곧 하늘의 뜻인데, 감히 속단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당선을 위해서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정치인이 한둘이겠는가.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거짓 굿을 하다 천벌을 받는 무속인이 나온다. 어쨌든 각자의 신을 모시는 사람들인만큼 법보다 더 중요한 윤리적 기준, 흔히 말하는 '동티'나지 않게 지켜야하는 규칙이 있는 듯하다. 당연히 사람을 속이고, 타인을 해하고, 사악한 욕심을 이루기 위한 무속은 금지되는 일일 것이다.
정치인이 점집을 찾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물 조심"하라면 물을 조심하고, "차 조심"하라면 차 조심하고 운전 조심하면 된다. “어질게 정치하라”고 하면 국민을 위해 정치하면 된다. 오히려 세상 자기 높은 줄만 아는 사람들한테도 '신빨'만큼은 귀기울이게 된다. 국민을 위한 공적인 의지만 명확하다면, 무속인을 만나 더 나은 정치와 국정을 하겠다면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 그릇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속을 활용하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국민의 세금을 무속인에게 쓰거나, 공직자가 무속에 눈이 멀어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심지어 국민을 속이고, 상대 후보를 해하려는 무속은 정치인이나 무속인이나 모두 천벌받을 짓이다. 당연히 그럴때 정치가 오염되고 잘못된 무속이 판을 친다.
세상 권력을 손에 쥐고도 내일이 불안하고, 화나는 사람들의 사악한 의지가 무속을 만나 끔찍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사악하면 좋은 행동이 나올 수가 없다. 무속은 핑계고, 결국 사악한 마음이 '삿된 것'을 불러오는 법이다.
무속은 오래된 문화이고,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조언의 공간이다. 잘 쓰이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도구가 된다. 문제는 언제나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인의 무속 의존이 불편한 이유는, 무속이 위험해서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위해 무속을 찾을 때 위험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례를 꽤나 봐오고 있다.
무속이 죄가 아니다. 욕심이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