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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Nov 20. 2021

포그나무

편의 속에 사라지는 아름다운 역사들

포그나무

오래전 우리 마을 입구에는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 모두가 기억하는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가장 처음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엄마가 시집을 왔을 때도, 아빠의 탄생, 할매 할배의 삶 속에 항상 있어왔던 나무다. 어쩌면 그 윗대의 윗대에도 말이다.


그 앞으론 논밭이 펼쳐지고 개울이 흘러 여름이면 우리 삼 남매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등이, 어깨가 빨개지도록 물놀이를 했고, 어른들은 논밭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지치면 거칠게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쉬거나 젖은 옷을 나무에 넓게 펼쳐 말렸다. 어른이며 아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큰 쉼터…


밤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든 어른들이 모깃불을 피우고,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누군가가 시작한 노래가 떼창이 되기도 했다. 목청 좋은 내 아버지가 선창을 할 때도 있었고 어느 아낙의 삶과 애환이 묻은 원곡을 알 수 없는 노래에 모두가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어딘가 우리 할매의 익숙한 부채질 아래엔 한낮 발갛게 달아 껍질이 일어난 등을 하늘로 향한 채 엎드려 잠이 든 내가 있다.. 그런 따뜻하고 그리운 기억.


마을에는 세 그루 정도의 아주 커다랗고 오래된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가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이름을 가진 나무는 동네에서 포그나무 단 한그루뿐이었다. 이름도 더할 나위 없이 예쁜 포그나무.


새마을 운동이며, 동네 발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고 지도자들의 모임도 잦았던 시기가 있었다. 도로가 넓어지고 아스팔트가 깔리고 동네를 통과하던 꼬불꼬불 완행 버스길이 직선으로 펴졌다. 동네 어귀에서 헌 점빵 앞을 뱅글 돌아 마을회관을 지나가야 동네를 빠져나가던 완행버스는 그 옛길을 버려둔 채 논밭을 가로지르는 직선 길로 달려 나갔다. 두 번을 정차하던 버스는 제대로 된 정류장이 생기면서 동네 한 곳에서만 정차를 하게 되었다.

포그나무는 아스팔트 반듯한 찻길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한 상실의 시기에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어느 주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나무터에서 눈물을 쏟았다. 어린 날의 기억을 통째 잃은 기분이었다.


영원히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많은 것들이 '고작' '그깟' 이유들로 사라져 간다. 대단한 부귀와 영화를 동네에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대단한 시간 단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더라도 도로의 폭은 충분했다.( 생각일 뿐이지만…) 심지어 대개의 집에서 자차를 소유하게  이후 시골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져 하루종일 동네를 지나는 버스는 고작 두, 세 대가 전부인지라  도로는 과연 무엇을 위해 넓어져야 했고 포그나무는 무엇을 위해 죽어가야 했나 하는 생각만 든다.

개발이란 이름 뒤로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5분의 시간 단축을 위해 사라진 500년의 역사무덤 같은  아스팔트 위로 사람들의 새롭고 바쁜 삶은 계속되고 있고 기억 속에 포그나무는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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