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리 Sep 21. 2017

여자의 짜증을 무조건 참아야할 때

셋째 임신기 (1)

며칠 짜증이 부쩍 늘었다. 남편이 조금만 거슬리는 어투로 이야기를 한다싶으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분명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와 말투인데 난 참을수가 없다. 그의 느긋함이 답답하고, 언어장벽으로 인해 두 번 세 번 설명해야 하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 그의 느긋함이 새로운 일도 아니고 원래 우리 사이는 반복해서 설명하는 일이 자주 있어왔다. 처음에는 반복적인 설명과 추가로 요구되는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는데, 이제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 답답해! 빨리 좀 해!!"


짜증 섞인 말을 뱉기가 무섭게 후회가 밀려온다. 이어서 남편의 당황한 표정을 볼 때면 내가 왜 이럴까 원망스럽다.


"자기. 요즘.. 짜증 너무 많이 내는데. 내가 그렇게 싫어? 나랑 사는게 행복하지 않다면 말해줘."


아.. 아니. 그런게 아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심지어 만난지 겨우 26개월 남짓할 뿐이다. 그런데 벌써 사랑이 식었다고? 설마.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비극이잖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 책까지 썼잖아? 깊은 상처를 치유해 주고 나에게 울타리를 만들어준 유일한 사람, 내 사랑 쟝. 그런데 내가 지금 쟝에게 매일같이 짜증을 내고 있다.


이어서 쟝이 말했다.


"우리 벌써 2년이 넘었어.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봐."


'여보야.. 그렇게 말하지마. 짜증을 내는 내 잘못이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듣기 싫어.'


내 짜증의 원인이 무엇일까? 여름더위 탓을 하다가, 이젠 장마와 함께 시작된 끈적한 날씨 탓을 했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쟝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렇게 짜증이 날까.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하기 위해서 한 가지 장치를 고안해냈다. '짜증 섞인 말을 할 때마다 만원씩 내놓기' 그 돈은 모아서 데이트하는데 쓰기로 했다. 일단 이 작전은 적당히 효과를 발휘했다. 마구 짜증을 내다가도 상대방이 "만원!" 하는 순간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하고 감정을 다잡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착출한 벌금이 차곡차곡 모이면서 짜증내는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또 짜증이 폭발했다. 내가 내 감정을 못참고 '아차' 하는 순간, 쟝은 손을 내밀며 외쳤다.


"만원!!"

"지금 현금 없는데."

"은행가서 찾아와."

"뭐?"

"돈 찾아와."

"알았어."


난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자 쟝이 말렸다.

 

"자갸 농담이야. 내일 해!"

"됐거든?(자존심이 있지)"

"그럼 나도 카드 줄게 찾아와. 5만원."


그도 5만원 어치의 짜증을 저금해 둔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은행을 향했다. ATM기에서 현금을 찾아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한 군데 더 들릴 곳이 있었다. 바로 약국. 생리가 일주일 정도 늦은 상태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테스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 증상이 없지만 설마 싶었다. 그리고 두 줄이 나왔다.



쟝은 기뻐서 좋아죽었다. 그의 흥분한 표정을 보면서 나도 기뻤다. '내가 미친년이지..' 싶을 정도로 짜증을 많이 냈는데 모두 임신 호르몬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난 여전히 쟝을 사랑한다!


'내가 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시적이었던 것일까? 이렇게 쉽게 식을만한 감정이었던걸까? 이렇게 서서히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진다면, 남은 일생은 어떻게 살아가지? 설마! 일시적인 것일꺼야'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짜증이 임신 호르몬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쟝 역시 아내의 지나친 짜증으로 인해 괴롭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우린 함께 "다행이다!"를 외쳤다. 물론 그날로 짜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어서 입덧이 찾아오고 나의 짜증은 절정에 다달았다. 특히 프랑스 여행 한달 동안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떠날 줄 모르는 입덧과 극심한 피로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우울했다. 수동 자동차가 대부분인 프랑스에서 2종 운전면허 밖에 없는 나는 남편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수가 없었고, 잠시라도 그가 곁에 없으면 화가 났다. 힘든 아내를 대신에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임신 짜증'으로 화답했다.


후에 임신 동기 친구를 만나 짜증으로 인한 다툼과 불행에 대해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 역시 아침에 남편과 싸워서 너무나 우울하다고 고백했다. 싸움은 늘 별거 아닌 일에서 시작했다. 임신을 하면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고 못견디게 화가 난다. 그런 뒤에는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실망하고 더욱 우울해지고. 자아분열을 겪듯 내가 아닌 나와 싸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임신 초기에 이같은 현상은 매우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 첫번째 임신이라면 남편들은 크게 당황한다. 아내가 내가 알던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듯한 기분마저 들고 어찌 해야할지 경험이 없어 미숙하게 대처한다. 그럼 아내는 더 화가 나고 잦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고 만다. 그만큼 임신으로 인한 여자의 심적 변화는 크고 부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슬기롭게 대처하며 부부가 함께 잘 이겨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쟝은 아내의 임신 짜증을 잘 견뎌냈다. 짜증이 차오른 아내를 데리고 나가 외식도 하고 마사지도 해주고 애를 많이 쓰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힘들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짜증벌금은 20만원을 넘어섰지만 더이상 늘지 않고 있다. 임신 4개월에 들어서면서 나의 짜증이 줄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예민해져서 "다시는 임신 못해! 안해!!"하고 엉엉 울어버리고는 한다. 쟝도 한다. "당연하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도 못해." 이렇게 임신 호르몬은 부부 사이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니 남자들이여, 아내가 임신했을 때 우울증에 빠지고 버럭 화를 낸다면 정상이다. 화를 참고 아내를 이해하는 시간을 견뎌내면 어느새 예쁜 천사가 곁에 와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수시로 아내에게 말해주길. "힘들지? 내가 잘해줄게. 그리고 당신 너무 예뻐.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