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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인간

미안, 로벨리아

2021년 4월 30일

by 김담유


지난주에 남편이 안개꽃과 로벨리아 화분을 사서 들어온 날이 있었다. 언젠가 강화도에 바람 쐬러 다녀왔을 때, 고려궁지 앞 카페에 오종종 나와 앉은 안개꽃 화분을 보며 탄성을 지르던 내 모습을 마음에 담아둔 모양이었다. 안개꽃이나 봄맞이꽃 등 손톱보다 작은 하얀 꽃들이 무리를 이뤄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지는데, 생각해보니 중학생 때 절친이 매번 안개꽃을 선물해줘서 안개꽃을 좋아하게 된 기억이 난다.


여하튼 이 예쁜 꽃들을 매일 보려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매일 물을 주라고 꽃집 주인이 일러주었다기에 팁을 잊지 않으려고 남편에게 여러 번 되묻고 마음에 새겨두었었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매일같이 물 주기를 일주일, 그런데 오늘 로벨리아가 심상치 않다. 우주에서 막 생성된 푸른 별과도 같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참 예뻤던 줄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이 하나도 없다. 할 일이 산더미여서 마음이 급한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안 되겠다 싶어 비닐을 깔고 화분의 흙을 쏟아보았다. 맙소사, 마른 흙은 온데간데없고 물이 뼛속까지 배어든(?) 진흙탕이다.


일단 마른 흙을 섞어 분갈이를 마무리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로벨리아를 검색해봤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내한성식물, 4~6월에 꽃을 피우고 9~10월에 씨를 맺는 한해살이풀. 절대 습하게 키우면 안 되는 식물. 물이 화분 아래로 철철 흘러내릴 때까지 주면 안 되는 아이를 매일같이 물고문을 시켰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차고 넘치는 게 정보건만 꽃집 주인장 말만 믿고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올가을 씨를 받을 수나 있으려나. 새삼 로벨리아의 꽃말이 의미심장하다. ‘악의.’ 이 예쁜 꽃에 왜 이런 독한 의미가 붙었을꼬.

미안, 로벨리아. 악의가 아니었어. 믿어줘.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 예쁘다 환호하고 소리 지르며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미는 일은 잘하면서, 기초적인 생태 습성도 알아보지 않는 나의 게으름에 할 말이 없다. 작년에 씨를 뿌려 스무 그루나 싹을 피워낸 해바라기를 여름 장마철에 베란다에 그대로 두는 바람에 모두 익사시킨 사람이 바로 나다. 그때도 싹이 예쁘게 자란다며 사진 찍어 SNS에 시전하기 바빴는데. 돌이켜 보니 이 무심한 행동들이 곧 악의의 소치라는 걸 알겠다.


미안, 로벨리아. 나의 악의를 반성할게. 믿어줘.

제발 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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