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그래피티와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내가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나를 매혹한 것은 다름 아닌 그래피티들이었다. 알고 보니 몇몇 사람들은 그래피티를 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찾아올 정도로 그래피티로 유명한 곳이었다.
전후 베를린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은 값싼 베를린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표현하고 도시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고 표출하기 위해서 그래피티를 했다. 벽에 '태깅'을 하고 전단지를 붙이고, 자신의 그림을 붙이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예술 행위가 베를린을 덮었고 도시에 활력과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나는 이런 그래피티가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었다고 느낀다. 그래피티는 일종의 자유를 느끼는 행위이자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세상에 알리는 행위이다.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그래피티를 통해 도시를 점유한다고 말하듯이, 도시에서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래피티를 하면서, 혹은 그 결과물로서 발현하는 '자유'는 베를린에 역동성과 자유를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맥락에서 조금 세는 것 같긴 하지만 베를린에서 내가 느낄 수 있던 자유는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유다. 그래서 '자율'에 가까운 자유라고도 느껴진다.
이렇게 그래피티로 뒤덮이고 티켓도 '잘' 검사하지 않아서 무법지대처럼 보이는 베를린 지하철이지만, 만약 무임승차를 하다가 걸린다면 티켓 가격의 몊 배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베를린의 자유는 큰 책임이 따른다.
베를린의 자유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상단에 얼굴을 위트페이스트 기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인데, 그림을 종이에 그리거나 인쇄해서 밀가루풀로 벽에 붙이는 방법이다. 생각보다 견고하고 꽤 오래간다. 흥미가 있으면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의 작업을 추천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길이 167km, 높이 3.7m에 달하는 장벽으로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었다. 1989년 장벽이 무너진 후 118명의 예술가들이 장벽의 일부분에 그린 그림들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이다.
베를린에 대한 글을 그래피티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베를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래피티였다. 한 10일 정도 있으면서 베를린의 전부를 알 수는 없었지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도시를 뒤덮은 낙서와 그림들이고, 그것이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에서 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도시 속에서 자유롭게, 또 능동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환경 속에 내가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의 주위는 모두 낙서로 덮여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 존재를 표출하며 도시를 점유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도시에 알리는 게 아닐까? 마치 그래피티를 찬양하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베를린의 자유는 큰 책임이 따른다(그래피티를 하다가 걸리면 곤란해진다). 그래피티는 불법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베를린의 모습이 좋았다.
이렇게 베를린의 환경을 보면서 베를린이 어떤 도시인지, 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깊게,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