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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마음도 잃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글, 만들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간다면 당연히 그런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그때는 원하는 만큼 입시 원서를 넣을 수 있었기에,

성적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어도 나답게 선택하고 싶었다.


드디어 성인이 되어 자유가 시작되는 시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의 그림자 안에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단절된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엄마는 내가 원치 않는 지역 대학에 예치금을 넣어버렸다.

나는 울면서, 정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마음은 무시당했다.


애초에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추락하는 동생의 성적과 무너지는 체면을

나의 ‘명문대’ 간판으로 메꾸려 했다.

심지어 명문대 본캠도 아니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엄마의 체면을 지탱하는 도구가 되었다.


동생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목고에서 떨어진 동생이

집 앞에 있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그를 타지의 제법 공부 잘한다는 고등학교에 보냈다.


동생도 울면서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동생의 목소리 또한 묵살되었다.


돌이켜보면, 동생은 엄마의 그림자에서 떨어져 나오는 게

무섭지 않았을까.

나보다 더 어린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창피함을 견디지 못해

우리 둘을 ‘유배’ 보낸 것이었다.


그때부터 트리거가 당겨졌다.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트리거가 작동한 듯했다.


이야기를 쓰면서도 씁쓸한 웃음이 난다.

이 대목에서 아빠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는다.

엄마가 식음을 전폐하자, 아빠는 엄마만 챙기기에 바빴고

그 선택을 ‘현명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나도 동생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잃어갔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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