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분명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곧 두려움이었다.
선배들이 술을 마시자고 부르고,
동기들이 늦게까지 놀자고 하고,
동아리와 집부 활동에 참여하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겠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나에게 유일한 안전지대는
곧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단칸방 하숙집 별채였다.
보일러가 고장 나 바닥이 탄 방이었지만,
그곳만이 집을 떠난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대학교 1학년 내내 나는 매주 고향에 내려갔다.
대학 생활의 꽃이라는 MT 조차
나에게는 전쟁터 같아서,
엄마가 쓰러졌다는 핑계를 대고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빠가 스트레스로 인해
안압이 올라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대학에도, 집에도
편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바퀴벌레 방에서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타지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흔히 준다는
‘엄카’(비상용 신용카드)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집이 가난했다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조차 받지 못했기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다른 대학생들이 미팅, 여행, 추억을 만들 때
나는 그저 생계형 대학생이었다.
내 인생에서 재미없고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대학 시절이 포함된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날들이 늘면서
나는 더 많은 일을 겪었다.
지역 텃세를 부리는 동기와 선배들,
편의점에 난입한 취객들,
술집에서 일해보라며 명함을 건네는 사람들,
거지의 욕설, 하숙집 골목길을 쫓아온 스토커 외국인,
전봇대 앞에서 자위를 하던 바바리맨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숙집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지금 말하면 유치한 이유였다.
나를 좋아한다는 남자애가 들어오자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입안에서 밥알이 흙처럼 굴러다니는 고통을 느꼈고,
죽고 싶어 약국에서 수면 유도제를 사 먹기까지 했다.
그 어떤 일도 가족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집에 가면
타지 고등학교에 간 동생의 기숙사에서
술병들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들고 오는
엄마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 표현도 해보았다.
편입하고 싶다, 다른 과로 옮기고 싶다 말했지만
역시나 내 의견은 묵살당했다.
성인이 되면 내 길을 스스로 선택할 줄 알았다.
부모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길이라는 게 있었을까?
엄마가 정해준 길 위에서,
보내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부모 밑에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
내가 길을 잃고 있는 동안
동생은 이미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어둠 속으로
나 역시 물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