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튜디오 임장기 (2), 집 구할 수 있을까?

by 지구별

런던에 도착하고 난 다음날부터 임장은 계속됐다. 전날 밤에 오픈 렌트, 주플라 등 부동산 중개 사이트를 서치하고 메시지를 보내놓으면 다음날 아침 온 답장을 보고 임장 날짜를 정했다. 오픈 렌트의 경우 부동산 에이전시인 경우도 있지만, 플랫 관리인인 경우도 많아서 일정을 잡는데 더 수월했다.

내가 정한 예산(하아 피눈물 나는 숫자...) 안에 그래도 런던 1존인 곳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플랫 지하 1층에 있는 관리인 사무실 앞으로 오라는 메시지였다. 장소는 하이 스트리트 켄싱턴역에서 도보 5분 정도의 플랏이었는데, 2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동네를 걸어보니 분위기가 좋았다. 우선 플랫은 대로변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있어서 도로에 접하고는 있지만 크게 소음에 시달릴 것 같지 않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있더라도 안전해보였다. 그리고 주변 플랫들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역에서 걸어서 도보 5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되어 에이전시 앞에 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당황했다. 에이전트와는 이메일로 소통했는데 이메일을 보내도 토요일 낮에 그가 메일을 확인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동네 한 바퀴를 더 돌고 돌아와도 에이전트가 없으면 이메일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동네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에이전시 앞에 또 다른 임차 후보자(!)가 서 있었고 에이전트도 나타났다. 알고 보니 내가 연락한 에이전트가 아닌 직원이었는데, 이미 기다리고 있던 후보자와 달리 나의 방문은 전달이 되지 않은 듯했다. 여기까지 와서 집도 못보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 내 소개를 하고 미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존과 같이 플랫을 둘러보기로 했다.

4층 플랫에 3층에 위치한 스튜디오와 지하층 스튜디오를 보여줬다. 먼저 본 3층 스튜디오는 다 갖추고는 있었지만 작아도 너무 작았다. 여기도 처음 본 집과 마찬가지로 책상과 의자 하나 둘 공간이 없었다. 침대와 부엌이 너무 가까워서 요리를 했을 때 침대에 음식 냄새가 다 밸 것 같았다. 두 번 째로 본 지하 스튜디오는 공간이 더 넓었다. 스튜디오다 보니 부엌과 침대가 한 방 안에 있는 것은 같았지만 곳곳에 수납 공간이 많았고, 지하층이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중정(?)도 있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지하층은 이런 중정이 다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방에 들어갈 때까지 혼자 쓰는 작은 복도가 있어서 활용할 공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하방은 역시나 자신이 없었다. 존과 함께 지하에 있는 에이전시 사무실에 들러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크기가 더 작기는 했지만 분명 이 플랫에 산다면 더 쾌적할 것이 뻔한 3층 플랫 가격이 지하방보다 더 쌌다. 심지어 3층 플랫은 오픈 렌트에 광고한 가격보다 50파운드가 더 싼 것이 아닌가!

작은 크기와 함께 단점이 뻔히 보였지만 마음이 좀 흔들렸다. 오퍼 종이를 가지고 나와 다음 뷰잉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동네 산책을 더 해보기로 했다. 대로변에는 슈퍼가 브랜드 별로 여러 개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 괜찮은 카페도 많이 보였다. 걸어서 15~20분 정도면 무려 하이드파크에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동네가 마음에 들었던 하이 켄싱턴 스트리트역 근처 3층 플랫 내부. 광각으로 찍다보니 손가락 끄트머리가 찍혔다. 그만큼 내부가 매우 좁았다.

이날 또 다른 지하방을 봤다. 2존 핀칠리 로드역에서 도보 7분 정도의 플랫으로 이곳은 이 플랫에 살면서 관리인 역할도 겸하는 매니저가 보여줬다. 딱 내가 정한 예산의 집이었고, 지하방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지만, 공간은 넓었다. 욕실에 샤워부스가 아니라 욕조가 딸려 있다는 점도 플러스였다. 집 관리도 잘해두어서 깨끗하고 소파도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그런데 지하방을 도저히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지하에서 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런던까지 와서 이 월세를 내고 지하에서 살아야 한다니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예산에 매우 넓었던 핀칠리 로드역 근처의 지하방. 깔끔했지만 지하방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이날의 마지막 뷰잉은 런던 교통의 중심지 세인트 판크라스역 뒷쪽에 있는 플랫이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도 위치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튜브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예산에 맞으니 한 번 봐보자는 마음에 뷰잉을 신청했다. 에이전트가 10분 정도 늦는다고 해서 동네를 둘러볼 시간이 많았는데, 플랫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동네는 내부가 아무리 좋아도 못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말이라 플랫 앞 작은 공원에 동네 주민들이 많이 나와서 휴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공원 바로 앞이라 시끄러울 것 같았다. 또 플랫까지 들어가는 길이 낮인데도 어둡고 미로같아서 밤에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내부도 아쉬웠다. 붙박이 벽에 침대가 붙어 있고 매트리스를 내려서 쓰는 구조였다. 방이 좁으니 내놓은 자구책이겠지만 침구를 갖추고 나면 사실상 매트리스를 들어올리고 나머지 공간을 활용하면서 쓰기는 어려워보였다. 그렇다. 이 집도 무지하게 작다는 뜻이다.

매트리스를 들어올리고 생긴 공간에서 찍은 모습. 저 붙박이장을 열면 부엌이 있었다. 이곳은 보자마자 탈락.

이 3곳을 둘러보고는 런던에서 혼자 살 집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현실을 자각했다. 이래서 다들 플랫 메이트를 구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정말 누군가와 공간을 함께 쓰고 싶지가 않았다. LSE 기숙사 숙소에서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써보고 더더욱 그렇게 결심했다. 이제 선택지는 예산을 더 올리거나, 이 예산 범위 내에서 다른 동네를 더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날이 런던에 도착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으니 조바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어딘가는 마음에 드는 플랫이 있을거라고 굳게 믿고.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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