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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by 아는개산책

나는 또다시 어두운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소리가 새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웅크리고 앉는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으면...'


이 문이 열려 빛이 새어 들어오면,

나는 또 어둠을 더 빨리 알아채게 되겠지.


'그냥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아도 좋아.'


비수처럼 꽂히는 날 선 어른들의 시선도,

폭력으로 무장한 친구라는 아이들의 관심도,

오늘은 모두 나를 잊고 흘러가 줬으면.


다 자라지 못한 나는 그렇게 웅크려 시간을 세나 간다.


1초.

2초.

3초.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나야 많은 시간인 걸까.

백초일까.

만초일까.


빨리 나도 어른이 되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


어른이 되면.

정말 달라지긴 하는 걸까.


내 앞에 걸려 있는 노란 해바라기 무늬 원피스.

엄마의 원피스를 입고 진짜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에서 뛰어놀고 싶다.


'나 잡아봐라'


아,

를 진심으로 바라봐 줄 사람도 어딘가 있긴 할까.


숨어버리는 게 쉽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시키기 전에.


'배가 고프다...'


이대로.

잠들까.


그때 확-


장롱문이 열리고 구석에 숨어있던 수하의 몸이 화들짝 반응한다.


"이. 수. 하. 밥 먹어"


"엄마... 용서해 주세요."


"또."


"제발..."


"소설 쓰고 앉아있네! 너 빨리 나와서 밥 안 먹어? 숨바꼭질 그만하고."


그제야 중학생인 수하는 저린 다리를 하나씩 뻗어 천천히 옷장 밖으로 나온다.


"수민이 아직 안 왔어? 오면 놀래켜줄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오자마자 책가방 던지고 친구집 간다고 나갔어."


"아이씨.,실패네. 반찬은 뭔데"


"반찬 투정 할 거면 먹지 마."


엄마는 양팔을 허리에 얹고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밥. 주세요. 어머니."


수하가 생글거리며 에이프런을 두른 엄마의 팔짱을 낀다. 엄마도 마주보고 웃으며 수하가 낀 팔을 꼭 잡아준다.


그.


틈 사이로.


보인다.


옷장 속에 숨어있는 또 한 명의 웅크린 아이.

아니,


수십.

수백.

수천.. 만..?


하지만.

우리 가족 식사부터.


너희는.

더 넉넉한 사람들이 챙겨주겠지.


조용히

문을 닫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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