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그것을 맞닥뜨리게 된 순간의 당혹감은 머릿속에 꽤나 오래 남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갈 순 없으니 슬픔에 오래 잠겨 있기보단 그것을 통해 배우고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미래의 나를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 당시의 차량 사고는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장면입니다. 다행히 시속 30~40km 정도로 가고 있다가 살짝 쿵 부딪혀서 어떠한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불과 한 달 전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만 해도 교통사고를 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그래도 해당 경험으로 배운 게 있다면 그 이후로 항상 조심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겁니다. 간혹 고속도로에선 속도를 조금 내기도 하지만 항상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제 나름에 안전운전을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요즘엔 탑차를 혼자 끌고 서울 출장을 가거나 잘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물류직원인건가 싶을 정도로 하루종일 운전만 하는 날도 있긴 하지만요..ㅎ
다사다난했던 첫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 다음 일정은 B2B 전시회였습니다. 당시에 사업 시작을 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납품을 진행하고 있는 거래처라곤 마땅히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해당 전시회를 통해 '쿠팡, 컬리, 이마트 등 사람들이 말하면 다 아는 대기업의 명함을 받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팝업스토어가 아닌 첫 전시회는 저에게 꽤나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에 어느 기관 소속으로 부스비를 지원받아 나갔었는데 부스 컨셉이 옛날 추억의 식품을 파는? 그런 컨셉으로 꾸며져 있어 80~90년대의 복학생 교복을 입고 각 기업의 담당자들에게 저희 제품을 열심히 발품 했습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대표님이 급히 사정이 생겨 올라오자마자 전주로 다시 내려가야 했고 부스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카드리더기를 놓고 와 결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임시방편으로 어플을 부랴부랴 깔아 카드번호를 일일이 쳐서 결제를 하곤 했었죠. 다행히 부스 위치는 바로 입구여서 좋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이라도 우리 제품을 먹어보고 갈 수 있도록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먹어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이에 이 사람이 듣든 말든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제품의 장점을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전시회가 끝났을 때 명함을 한 움큼 쥘 수 있는 만큼은 받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본인이 예상하셨던 거보다 훨씬 많이 명함을 받아서 놀라셨던 거 같은데 해당 전시회를 똑같이, 똑같은 제품으로 전년도에 나갔는데 받은 명함이 거의 없다고 하셨거든요.
당시 명함을 수집하기 위한 저의 전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이 듣든 말든 일단 무조건 장점을 계속 나열했습니다. 대신 상대방이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말하기보단 '핵심 빼고 말하기' 전략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핵심은 나중에 말하기' 전략이 맞겠네요. 어차피 관심 없는 사람은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듣고 그냥 갈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역으로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내가 말할 수 있는 필살기를 먼저 던지지 말고 이 사람이 어느 정도 관심 단계로 접어들 수 있도록 만들 수준의 멘트만 던졌습니다.
여기서 반틈은 그냥 다른 부스로 가지만 반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뭔데요?'
이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이 사람이 나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판단하고 이때 숨겨두었던 우리의 무기들을 마구잡이로 꺼내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성사시키기 위해서 없는 얘기를 꾸며내거나 과장하지 않고 우리가 어떤 기업임을 담백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먼저 명함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관심이 있으면 알아서 먼저 명함을 건네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해 명함을 먼저 요청하는 곳에만 저도 저의 명함을 다시 건넸습니다.
거창한 전략은 아니지만 나름의 효과는 있었던 걸까요? 제가 전시회에 오기 전에 받고 싶다고 말했던 기업들의 명함은 거의 다 받았던 거 같습니다. 지난 팝업스토어에서 느꼈던 나의 부족함이 이번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영양분이 된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