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상처받지 말고 무시하자.

빌런 Epi #1. 네가 빌런이면 난 또라이야~

by 리하루

빌런을 만나기까지

10년 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주부로 제2의 삶을 전향했다.

한 번의 이직, 그리고 9년 동안은 한 회사에서 쭉 근무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팀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사업부라는 큰 틀에서 팀의 해외 이전, 육아 휴직 후 복직 등의 이유로 해당 팀에 머무르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중견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였는데, 각 팀마다 빌런의 종류가 아주 다양했고 대처 방식도 다 달랐다. 물론 대처 불가능한 형태의 빌런도 존재한다. 신입 사 원 때부터 터득한 나의 빌런 대처기에 대해 소개해보겠다.


TO가 있는 곳은 이유가 있다.

이직을 하고 팀에서 날 제일 먼저 따뜻하게 맞이해 준 나의 소팀장. 바로 그 따스한 여자가 빌런년이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번째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됐을 때였다. 갑자기 별로 친하지도 않은 타 부서 직원이 '은성기업'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지원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회사에 붙었고 곧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쩌지?' 생각했지만, 은성기업이 훨씬 큰 곳이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제안이었다. 철판을 깔고 온갖 핑계로 출근 일정을 늦춘 뒤 면접을 봤는데 이게 웬걸? 면접을 본 담당 팀장이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면접을 보고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전화가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해라!"

(참고로 저렇게 바로 면접자에게 전화로 반말하는 저 놈도 나중에 빌런으로 등장함..)


그렇게 나도 드디어 중견기업에 입성해서 만난, 이 소중하고도 감사한 자리에서의 소팀장이 알고 보니 이 팀 말고 이 회사에서도 유명한 난년이랄까.


이 사람의 빌런 짓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1. 아침에 인사하면 가만히 모니터만 보고 인사 안 받아줌.

2. 기분 나쁘면 점심 안 먹음.

3. 2번은 사실문제가 없음. 하지만 팀점이 기본인 분위기라 이 사람이 안 먹으면 나머지도 못 먹음.

4. 본인은 점심 안 먹을 거니까 너네끼리 먹고 오라고 점심시간 30분 남기고 말 함.

5. 문제가 생겨서 보고하면 그래서 해결책은 뭐냐, 알아봤냐, 대안도 확인 안 하고 왔냐고 지랄.

6. 5번을 겪은 후 대안을 다 생각하고 대처 방법 생각해서 보고하면 그걸 왜 이제보고하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보고해야지라고 지랄.

7. 밑에 대리가 잘못해도, 말단 사원이 잘못해도, 자기 라인의 사원, 주임, 대리 모두 줄줄이 불러서 옆에 세우고 "너는 도대체 뭐 했냐?"라며 소시지처럼 줄줄이 연대 꾸짖음.

8. 남편이랑 같은 회사에 다녀서 본인 일 다 끝나고 남편 기다리느라 집에 안 감.

9. 점심과 비슷한 분위기로 이 사람 집에 안 가면 나머지도 못 감.


나의 대처 방법

1. 인사는 예의이니 꼬박꼬박 하되 대답 안 해도 상처받지 않음.

2~4. 점심에 대한 건 방법이 없음. 내가 요즘 다시 사원으로 돌아간다면 그냥 팀점 안 하고 차라리 쭉 혼점 함.

5~6.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내 선에서 문제 안 생기게 진짜 열심히, 그리고 일을 잘했음. 그러다가 하나 잘못되면 옆 사업부에서 쳐다볼 정도로 우리 층이 떠나가라 내 이름을 부르며 히스테리 부렸음.

7. 뭐라고 하면 그냥 아묻따 "죄송합니다." 시전. 어차피 혼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뭐라고 해도 혼냄. 그냥 일정 부분 억울한 게 있어도 죄송하다고 하고 뒤에서 욕함.

8~9. 적당히 눈치 보다가 그냥 미친 척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당당하게 인사하고 갔음.


그녀는 아직도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역시 빌런은 회사를 오래 그리고 아주 잘 다닌다.


그리고 내가 이 팀에서 그녀는 만나고 느낀 점은 역시 아무리 좋은 회사라고 해도 TO가 있는 자리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이직을 두려워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직을 할 때 충분히 어느 자리에든 또라이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건 염두할 것.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빌런 짓은 바로.. 그녀보다 더 사악한 빌런을 창조했다는 업적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