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가끔은 쓰면서 살자

by 제은


악착같이 돈만 모으며 살지 않으려 한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걸 보는 것도 좋지만

현재에 조금만 양보하면 돈이라는 수단으로

물질을, 경험을, 편리함을 누릴 수가 있으니까.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 행복을 사자.

행복은 사실 때마다 배달되고 있다.

방금 발견한 완전히 내 취향인 문구류,

공짜 기프티콘으로 사 먹는 편의점 간식,

전자책 구독 서비스로 발견한 인생책,

비록 두 정거장만 걸으면 되지만

짐이 무거워 타는 버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유통기한
가까운 시일 이내, 현재까지라고 생각한다.


방금 나온 음식은
따뜻할 때 가장 맛있고,

나중에 먹겠다고 방치해 두면 상해버린다.
마찬가지로 행복도 미루고 미루면
결국 미룬 만큼을 누리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다.



인생은 트랙 위에서 반복되는 질주가 아니라
정원을 가꾸고 산책하는 향유에 더 가깝다.


휴일에 뭘 해야 좋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휴일의 목적은 생산이 아니라

비생산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펑펑 쓰자는 뜻은 아니다.

과잉 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환경을 저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가끔은 허용하자는 의미다.


많이 웃어 본 사람이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듯이,
많이 써 본 사람이
자신답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쓰는 것에도 경험과 연습이 필요하다.


뉴스에서 갈 곳 없는 사망자의 유산,

치매머니가 급증한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 모으기만 하다 끝나버린다면,
그건 상당히 억울하지 않을까.


죽기 전에 내가 모은 돈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스스로에게 유의미하게 느껴질지

자주 생각해 볼 일이다.



평일이면 증권사 앱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횡보하는 내 주식들에 한숨을 내쉬곤 했다.

어제 팔았어야 했나,
하루만 더 들고 있었어야 했나를
의미 없이 계속 후회하면서.


그때 깨달았다.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조기에 은퇴하려고 발버둥 치지 말아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완주하기 위해
결승선만 보면서 달리는 일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면

희생해 버린 만큼은 다시 살아낼 수 없다.

미래는 준비하는 것이지, 현재를 통째로

저당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단 단거리 트랙에서 벗어난다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걸으면서

속도를 줄인다고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우연히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며

그것들을 잘 보이도록 배치하고
자주 기뻐하는 일이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누우면

장난감을 쫓아 달리는 고양이처럼
의미도 없는 SNS 반응을 확인하다가
마지못해 쓰러지듯 잠들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랐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그려보고 싶다.

사소한 장면까지 또렷하게 자각하며,
그런 살아 있는 감각오늘도 어김없이

가슴에 안고 잠들고 싶다.



빨리 은퇴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활동이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생명에게 있어 죽음을 의미한다.


물론, 기왕이면 하기 싫은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할수록 좋다.

그래서 투자를 하는 것이지만.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평가절하하고,

투자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껏 그래왔듯 그럭저럭 잘 살아갈 것이다.

삼시 세끼 잘 챙기고, 가끔은 좋아하는 음식도 주문하고,

찬바람 부는 겨울날은 따듯한 이불속에서 잠들겠지.


미래의 일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로부터 천천히 쌓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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