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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Ⅰ. 첫사랑, 그녀와 마지막 순간

by 이서

유난히 저녁 공기가 싸늘했다.

오랜만에 함께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특별한 말 없이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저 일상의 연장선 같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알 수 없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전철이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차 안으로 발을 옮겼다. 가볍게 흔들리던 순간, 그녀의 어깨가 내 팔에 닿았다. 오랜만에 느낀 체온이었다.

차 안은 늘 그렇듯 붐볐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공기 위에 얇게 깔렸다. 창밖으로는 불빛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작은 습관,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던 옆얼굴, 무심히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전에는 몰랐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까?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기울던 그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그 시선. 그 모든 무심함이 오히려 대답처럼 느껴졌다.


“나… 조만간 결혼해. 좋은 사람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말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는 걸,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사랑만으로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현실의 벽 앞에서 나를 지키려 했고, 나는 그 벽을 무너뜨릴 용기가 없었다.


“잘 가.”


전철문이 열렸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곁을 떠났다. 그 표정 속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닫히는 문, 멀어지는 뒷모습, 떠나가는 전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이 지나갔다.

그리고 내 오랜 첫사랑도, 그 순간 함께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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