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이 있는 것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정말 정답일까.”
최근 방송된 프로그램 운명 동상이몽에서 한 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를 보며 이 질문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발달장애를 가진 화가 정은혜 씨다. 그녀는 미대 출신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색을 가진 화가로 성장했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며 장애인 가족의 삶과 애환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프로그램 속에서 만난 그녀의 남편 역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장애인 화실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고, 결국 부부가 되었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혼부부지만,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는 꾸밈이 없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서툰 표현 속에서도 마음을 전하려 애쓰는 모습은 오히려 더 깊은 신뢰를 느끼게 했다.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진심 어린 축복과 함께, 말로 꺼내지는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비슷한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과연 이 결혼은 오래갈 수 있을까?’
그러나 방송이 이어질수록 그 걱정은 점점 힘을 잃는다. 이들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 위에 놓여 있었다. 서로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안에서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간다. 일반적인 결혼이 때로는 계산과 역할 분담, 익숙함에 묶일 때가 있는 반면, 이들의 관계는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감정은 숨기지 않고, 애정은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깨닫는다.
문제는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라는 사실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애인 부부’라는 틀을 씌운 채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른바 ‘비장애인 부부’의 기준과 비교하며 평가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다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평범한 애정 표현에도 감동을 덧붙였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껍질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보라.”
이 말은 단순히 타인을 향한 조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사람을 본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껍질을 먼저 보고 판단해 왔던 것은 아닐까. 장애, 빈부, 성별, 출신 지역, 이념 같은 수많은 기준을 들이대며 사람을 분류하고, 이해했다고 착각해 왔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편견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더 위험한 것은, 그 편견이 너무 익숙해져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편견은 타인을 차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사고를 제한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 모든 선 긋기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좁은 세상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학창 시절 수학 시험이 떠올랐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 채 풀이를 적어 내려가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주변 친구들에게까지 베끼게 했던 경험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풀이 과정은 길었지만, 단 한 점도 인정받지 못했다. 문제를 ‘풀었다’고 생각했을 뿐, 사실은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익숙한 기준과 편리한 판단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오답을 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오답을 끝까지 붙들고 정답이라고 우기느냐다.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판단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내려놓을 용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문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내가 써 내려간 이 풀이가, 정말 정답인지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