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에펠탑 앞에서 만난 여자

by 재연

홍콩에 온 김에 가까운 마카오까지 들렸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약한 태풍의 영향인 듯했다. 그래도 마카오의 아름다운 호텔을 구경하기 위해 비바람을 맞아가며 열심히 걸었다. 런더너 호텔을 보며 감탄을 오백번 내뱉은 후 파리지앵 호텔로 향했다. 호텔 앞에 놓여있는 에펠탑은 파리에 온듯한 느낌을 줬다. 유럽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받을 수 있는 느낌이겠지만 말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본인의 전신샷을 찍기 어렵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삼각대를 챙겨야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풍경, 건물 사진만 찍었다. 에펠탑 역시 인증샷 정도로 남겨두고 건축물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러던 중 혼자 에펠탑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여자가 눈앞에 보였다. 실제 에펠탑의 높이는 아니겠지만 셀카로 얼굴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기에는 어려운 높이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 어려운 일을 시도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고충을 알기에 내가 찍어주고 싶었다. 슬금슬금 다가가서 그녀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 여자는 중국어로 말하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예상한 일이었기에 흔쾌히 오케이라고 하며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서로를 찍어주었다. 감사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가 싶었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았다. 런더너 호텔 방향이었다. 우리는 걷는 속도가 비슷했다. 서로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먼저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 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근처에는 호텔밖에 없어서 식당을 찾아다녀야 했다. 식당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니 무슨 거리로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자신이 사서 들고 있던 에그타르트를 하나 먹으라며 건네줬다.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은 게 괜찮다며 먹으라고 하길래 하나 집어 들어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무슨 가게의 에그타르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알려준 거리로 가는 길을 모르는 얼굴이 보였는지 잠깐 고민하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런더너 호텔을 내부를 통해서 가는 길을 아는 것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김에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2층에서 에펠탑과 빅벤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날 데려갔다. 그곳은 전망대 겸 포토존으로 쓰이고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 날 찍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줄을 섰다.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보였다. 작은 고급 카메라를 두 대나 가지고 있었다. 그 카메라로 나를 찍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를 찍어주기도 했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저 모국어로 여기저기 물어보며 길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정신없이 이끌려 다니기 바빴다는 속 편한 핑계를 댈 뿐이다.


그렇게 사진을 몇 장 찍고, 우리는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이왕 같이 가는 김에 저녁을 같이 먹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멋진 거리가 나타났다. 우리의 목적지였다. 마카오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에펠탑 앞에서 만난 인연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중국 느낌의 화려한 간판과 조명이 있었다. 식당과 여러 종류의 가게가 줄 지어 있는 곳이었다. 마카오라고 적힌 네온사인 앞에 서보라며 사진을 또 찍어줬다. 그 네온사인의 한자가 마카오를 의미한다고 알려줬다. 고마웠다.


무슨 음식을 먹을지 정해야 했다. 사실 딤섬, 완탕면, 우육면 등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봐서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 맛있는 아무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라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달달한 디저트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밥으로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기준이 없을 때 선택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선택을 떠넘기는 꼴을 보였다. 걸음이 길어지나 싶은 때였다. 그녀는 모닝티를 먹어봤냐고 물어봤다. 번역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모닝티가 뭔지 몰랐다. 먹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자 눈앞의 어느 식당에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사실 무슨 식당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모르겠다. 소갈비찜과 둥근 빵에 들어있는 카레 소스를 시켰다. 거기에 청경채처럼 생긴 데친 채소도 하나 시켰다. 광둥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했다. 나를 위한 것이라며 에그 밀크티도 하나 시켜줬다. 주문은 그녀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에그 밀크티가 맛있었다. 계란 노른자를 밀크티에 풀고, 설탕을 뿌려서 먹는 것이었다. 처음 먹는 음식이었지만 입맛에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소갈비찜은 한 입 베어물 수 없었다. 씹히지 않았다. 고무였다. 우리는 서로 한 입씩 맛보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소갈비찜은 안 먹는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음식에 단호한 그녀가 귀여웠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를 데리고 다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계산하려 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온 손님인데 그럴 수 없다며 자기가 계산했다. 너무 고마웠다. 의도치 않게 신세를 많이 졌다.


나는 당일 오후 8시에 페리를 이용해 홍콩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고, 그녀는 이틀 후에 홍콩으로 간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부두로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난 그저 아무 호텔에 가서 셔틀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늦는다는 경각심이 전혀 없었다.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그녀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절대 늦으면 안 된다며 근처에 있는 버스 관계자에게 길을 묻고, 폭풍 웹서핑을 시작했다. 결국 배차가 많은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같이 탔다. 그리고 그 호텔의 버스 승강장이 우리의 이별 장소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오늘 홍콩에 못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 그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헤어지기 아쉬웠다. 먼 나라에서 우연히 만난 따뜻한 사람과 이렇게 빨리 헤어지기 싫었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녀는 어느새 휴대폰 카메라를 킨 상태였다. 셀카 두 장을 찍었다. 그 사진과 아까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위챗이 있냐고 물어봤다. 당연하게도 없었다. 이번엔 내가 인스타그램이 있냐고 물어봤다. 중국은 해외 sns를 막아서 없다. 결국 이메일 주소를 남겨줬다. 여기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이다. 사실 계속 연락을 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물어본 거였는데 계획에 실패했다. 나중에 가입하면 되니까 위챗 아이디라도 받아올 걸 하며 후회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간단한 이메일조차 오지 않고 있다. 나에게만 즐거웠던 시간이고 소중한 인연이었던 건 아닐까 불안하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가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 후회하고 있다.


오늘 하루가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갈 예정이다. 어쩌면 숙소가 아닌 원래의 집으로 가서 사진을 받아 보내줄 수도 있겠다. 그러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고마운 그녀와의 인연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