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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설

기다려주시오, 국주 씨~!

어느 무주택자의 소망

by 세니사

주거복지포털에 알림 서비스 신청을 했더니 2~3일에 한 번씩 문자가 온다.

공공 또는 국민임대주택 알림이면, 지역을 확인한다.

서울로 통근이 가능한 거리라면, 공지글의 내용도 확인한다.

전용 면적이 39제곱미터 이상이면, 공지글에 첨부된 파일까지 열어본다.

그동안 거리와 면적,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임대주택을 만난 적은 없다.


드디어! 오늘 딱 마음에 드는 지역에, 딱 알맞은 평수를 만났다.

심지어 국민임대다!

첨부된 파일을 꼼꼼히 읽으며 신청 자격을 확인했다.

오, 이런!

아들 급여만으로도 가구 기준 소득을 넘어 버린다.

아들 급여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애를 독립시켜야 하나... 이 녀석은 왜 결혼을 빨리 안 해... 국민임대는 입주하면 최장 30년 거주가 가능하다는데...

아쉽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했다고 생활비를 내놓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집 아들 말로는 제 주변에서 집에 생활비 내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다. 내 주변엔 몇 있다. 아들과 나의 주변을 합쳐서 ‘거의 없다’ 정도로 타협이다.)

그래도 이 아들은 대략 2년 동안 월 3~40만 원을 내놓았었다.

그런데 취업 직후부터 주식 공부를 해오더니 마침내, 이제 돈을 모으겠다며 이체를 중단했다.

그즈음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연애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끊임없이 했으면서 결혼 생각은 없다던 녀석이 임자를 만난 모양이었다.


‘엄마한테 물려받을 재산이 1도 없으니 제 결혼 자금, 노후 자금, 혹시 모를 근로 공백기를 대비하는군, 요즘 애들은 확실히 달라. 영리해.’


좀, 샘이 난다.

늘 가족들 뒷바라지에 버는 대로 새어 나가는 세월을 수십 년 이고 지고 산 우리 세대에 비해 얼마나 단출하고 풍족한가.

그러나,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가 사라지고,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40%에 가까워지고,

인공지능에 밀려 언제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르고,

월급 모아 집 사는 꿈은 판타지 소설이 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벽은 한없이 높고 멀어진,

이런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청년 세대의 막막함과 좌절감을 헤아리면 안쓰럽다.

그러니 제가 번 돈이나마 모을 시간을 최대한 벌어 주는 일이 물려줄 재산 없는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지원이다.

독립시키긴... 개뿔...


나는 신혼부부도 아니고, 청년도 아니고, 고령자도 아니고, 생활보호대상자도 아니다.

무주택자라는 조건 하나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될 가능성은 어차피 희박하다.

아들이 결혼하거나 분가하고 나는 만 65세가 넘을 때까지, 전세대출 이자 감당하며 잘 지내보자.

그때가 되어 내 몫의 임대주택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인간이란 본디 어리석은(!) 희망으로 척박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기다려주시오, 국민임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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