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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상세페이지는 다를까

스킨케어 카테고리 온라인 상세페이지를 중심으로

by 이지

나도 늘 궁금했다.

그냥 ‘스타일이 다르다’고 하기에는, 그 차이의 깊이가 너무 깊다. 처음 한국의 상세페이지를 보면 ‘와, 정보 진짜 많다!’ 하고 감탄하게 된다. 할인 쿠폰에, 1+1 이벤트, 심지어 실시간 판매 랭킹까지 화려하게 쏟아져 나오니까. 마치 “지금 아니면 안 돼!” 하고 외치는 스릴러 영화 같다.


키엘 울트라훼이셜크림의 한국 상세페이지(좌), 일본 상세페이지(우)


그런데 일본 페이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 명확하기보다는 화려하고, 다양한 폰트와 테두리로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마치 “어서 오세요. 저희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하고 조용히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단순히 기술이나 디자인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배경에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의 효율성과,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와 ‘오모테나시(환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의 문화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 두 가지 다른 철학이 어떻게 페이지를 만들었는지,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 효율성의 결정체를 만들다


한국의 상세페이지는 한마디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영화를 두 배속으로 보고 , 맛집 웨이팅도 앱으로 미리 걸어두는 초효율을 추구한다. 왜?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싶어서다.


이런 심리는 소비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우리는 '스마트 소비자'를 지향한다. 제품을 꼼꼼히 따져보고, '가성비'를 최고 가치로 여기며,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 강하다. 특히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닿는 거라 더 신중하다. 우리는 브랜드의 이름만 믿고 사지 않는다. “이 제품이 정말 효과 있을까? 성분은 안전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원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해' 같은 앱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화해'는 화장품 성분을 분석해 등급을 매겨준다.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 이미 많은 소비자가 성분과 투명성에 대한 기준을 여기서 배운 셈이다. 그래서 브랜드들도 상세페이지에 전성분 리스트와 임상 결과를 꼼꼼하게 담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다른 곳으로 정보를 찾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뷰티 상세페이지를 보면, 임상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상세페이지가 시각적으로 밀도가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굵은 글씨와 인포그래픽으로 정보를 빽빽하게 채워 넣고, 시각적 요소를 중심으로 페이지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런 밀도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높은 편이다. 폰트 종류와 개수를 규격화하고, 의도적인 여백을 두어 정보를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첫 구매 혜택'이나 '실시간 랭킹' 처럼 소비자의 시선을 즉각적으로 사로잡는 정보가 페이지 상단에 집중되어 있어, '정보의 주목도'가 '정보의 신뢰도'보다 중시된다. 결국 한국의 상세페이지는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 제품의 장점을 요약한 하이라이트, '쇼케이스'와 같다.


동일한 클렌징 오일 카테고리의 한국 상세페이지(좌), 일본 상세페이지(우)


일본, 관계를 맺는 드라마를 쓰다


일본의 상세페이지는 한국과 완전히 다른 미학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일본의 페이지를 보고 '복잡하고 화려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빽빽한 텍스트와 여러 가지 폰트, 심지어는 밝은 색상의 플래시 배너들이 한 페이지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주얼 중심으로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한국의 디자인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디자인적 혼란이 아니라, '모노즈쿠리'와 '오모테나시'라는 일본 특유의 철학이 담긴 결과다.


'모노즈쿠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장인 정신을 뜻한다. 이 철학을 담기 위해 상세페이지는 단순히 제품 기능만 나열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탄생 비화, 창업자의 철학, 특정 성분을 고집한 이유 같은 이야기를 길고 풍성하게 들려준다. 소비자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제품에 대한 신뢰를 쌓고, 브랜드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낀다. 마치 오프라인 매장의 뷰티 컨설턴트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처럼 , 페이지 자체가 고객을 환대하는 '디지털 오모테나시'가 되는 거다.


신뢰를 쌓는 방식도 한국과 상이하다. 한국이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신뢰를 얻는다면, 일본은 경험과 커뮤니티에 기댄다. (경험, 즉 리뷰를 기반으로 신뢰를 얻는것은 같지만, 데이터와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상이하다) 일본의 '앳코스메(@cosme)'는 수많은 사용자 리뷰가 쌓인 거대한 커뮤니티다. 브랜드들은 상세페이지에 "앳코스메 랭킹 1위" 같은 문구를 넣는다. 이는 "수많은 사용자가 이미 경험하고 인정한 제품"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증거가 된다. 이처럼 일본의 페이지에서는 '정보의 신뢰도'가 '정보의 주목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거다.


일본의 페이지는 '만져볼 수 없는' 온라인 구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세심하게 제공한다. 제품의 용량, 사용법, 효능에 대한 설명을 서사적으로 풀어내며, 고객의 잠재적인 질문을 미리 예상하고 답해준다. 이는 '빠른 구매'를 재촉하기보다,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일본의 상세페이지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 여러 폰트가 복잡하게 얽혀 가독성이 낮아 보일 수 있다. 의도적인 여백도 최소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제공하려는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상세페이지 사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과 일본의 상세페이지는 그냥 다른 거다. 틀린 게 아니라. 하나의 페이지를 만드는 데도 이렇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게 흥미롭달까. 한국의 상세페이지는 바쁜 사람들을 위한 '효율적인 솔루션'이다. 빠른 속도로 핵심 정보만 볼 수있도록 구성한 '쇼케이스'다. 반면 일본의 상세페이지는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와 '오모테나시(환대)'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정성과 배려를 담아 서사를 푼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각자의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진화해온 거다.


그래서 단순히 상세페이지를 번역만 해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온라인 콘텐츠도 결국 '현지화'가 핵심이다. 한국 브랜드가 일본에서 통하려면 '빨리빨리'를 잠시 멈추고, '오모테나시'를 배워야 한다. 할인 정보보다는 브랜드의 서사로 상세페이지를 채워가야 한다. W컨셉이 일본에 진출했을 때 단순 번역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에게 맞춰 정보를 요약하고, 결제 방식을 다양하게 지원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해당 내용은 '상세페이지'에 대한 것으로, 프로모션 페이지와는 구분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면서..)


결국, 글로벌을 지향하는 콘텐츠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단순히 보기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현지의 문화, 현지의 습관, 그리고 그 심리까지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하나의 점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선'을 이해하는 일. 그게 바로 국경을 넘어 마음을 움직이는 디자이너의 진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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