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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에 올라오는 고통을 안다.

불안과 우울은 죽음과 생존의 경계였다.

by 김하루

“여보세요?”

나는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지우 아범은? 같이 있니? 김치 가져가라니까, 알겠다고 하고는 연락이 없네. 익기 전에 가져가야 해.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데, 너무 익으면 시어 빠져서 지져 먹어야 하잖니.”


시어머니는 억눌린 짜증을 삼키며 애써 차분히 말씀하셨다.


“잠시만요. 지금 엄마랑 있어서... 다른 방에서 받을게요.”


급히 방으로 들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 사실... 지우 아빠랑 통화가 안 돼요. 관리비가 밀려서 수돗물까지 끊겼어요. 지금 친정에 와 있어요. 아범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길고 깊은 한숨이 흐르며

마치 이미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따라왔다.


“지 아비랑 어쩜 그리 똑같니... 내가 미안하구나. 기다려 봐라, 내가 전화해 볼게. 지우는 잘 있지?”


그 순간, 누군가 내 고통을 함께 짊어져 주는 듯한 위로가 스며들자, 마음이 잠시 가벼워졌다.






사실, 지우가 태어난 뒤에야 시어머니가 두 아이를 키우며 무책임한 시아버지 밑에서 평생 고난을 견뎌야 했다는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었다.



통화를 끊은 뒤, 차갑게 식은 집안 공기 속에서 지우가 추울까 담요를 단단히 감싸 품에 안았다.

갑자기 목에 매실씨가 걸린 듯한 답답함이, 울분 섞인 서러움과 함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매핵기(梅核氣): 실제 이물질이 없는데도 목에 덩어리나 이물감이 느껴지는 증상으로, 주로 스트레스·불안·감정적 긴장 때문에 발생한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고, 철없이 과일을 집어먹던 내 아가씨 시절이 아련히 떠올랐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사업을 오래 하신 친정 부모님 덕에, 가난과 풍족함을 번갈아 오가며 자라왔고

이십 대 초반에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렸지만, 평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멈추지 않는 욕심은 결국 화근이 되어 집안을 또다시 기울게 했고

밀려든 고지서가 식탁 위를 덮었다.


“이번 달도 밀렸어...”

어머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부엌 천장의 형광등은 차갑게 깜박이며 집 안 공기를 더욱 음울하게 만들었으며,

답답한 마음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 무렵 나는 학원 강사로 일하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에 경고등이 켜지듯 위기의 기운이 스며들자, 불안과 우울은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눈꺼풀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떨렸고, 칠판에 글씨를 쓰던 손마저 경련하듯 흔들렸다.

수업을 이어가야 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혀 있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한 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국 강사의 자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증상은 어김없이 재발했다.

보이지 않는 적이 나를 조롱하듯, 불안은 쉼 없이 몰려들고 그 지독한 파도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직업을 잃고 자존감이 사라지며, 깊고 짙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울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그것이 곧 죽음과 생존의 경계였다.


‘괜찮아...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 다독여 보았지만, 그 말은 허공에 흩어질 뿐 힘을 주지 못했다.


목에 맺힌 고통은, 더 깊은 어둠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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