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잖아.
며칠이 지나, 집 안에서 출산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더는 그와 다투고 싶지도, 감정을 소모할 힘도 남지 않았다.
며칠째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려, 그저 묵묵히 집안일만 했다.
그 때문인지 몸살 기운이 서서히 올라왔다.
깔끔을 넘어 강박에 가까운 그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화장실엔 작은 물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빨래는 늘 꼿꼿이 개어 두어야 했고, 저녁 식사는 그의 입맛에 맞춰야 했다.
TV 위에 먼지 한 톨이라도 쌓이면 불벼락 같은 고함이 터졌다.
나는 늘 긴장한 채 하루를 버텼다.
분리수거나 음식물쓰레기가 조금이라도 쌓이면 폭탄처럼 욱하는 남편 때문에, 나는 부지런해야만 했다.
드라마 속 임산부들처럼 “몸이 무겁다”, “힘들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런 말을 했다간 아이가 놀라든 말든, 윽박지르는 그의 목소리만 커졌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했다.
그날, 빨래를 널고 있을 때 삼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삼촌!”
“어, 지연아. 아기 곧 태어나지? 병원은 어디야?”
“응, 문자로 주소 보내드릴게요. 근데 삼촌, 잘 지내요? 어제부터 엄마가 연락이 안 돼서 친정에 가보려던 참이었어요. 혹시 엄마랑 통화하셨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화기 너머로 한숨이 들려왔다.
“왜요, 삼촌? 무슨 일 있어요?”
“... 엄마가 어제 쓰러지셨어. 병원 다녀오는 길인데, 너무 놀라진 마. 다행히 의사 말로는 괜찮대.”
“뭐라고요? 어디가 아프신데요? 아뇨, 지금 바로 갈게요.”
나는 급히 가방을 챙겨 친정으로 향했다.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을 열자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괜찮아?!”
엄마의 얼굴 한쪽이 마비되어 있었다.
왼쪽 입은 비틀렸고, 한쪽 눈은 감긴 채 멈춰 있었으며,
왼팔은 굳은 듯 꼬부라져 있었다.
그간의 스트레스와 고된 삶이 결국 엄마의 몸을 무너뜨린 것이다.
엄마는 끙끙대며 일어나려 했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말 한마디 하려 애쓰는 입술이 덜덜 떨리며 “지연아…”를 부르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
내 목소리는 울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때 그 꼬마가 엄마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오, 나의 가장 소중한 엄마여. 나의 영혼의 동반자여.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움직이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아... 한쪽이 마비.. 됐나 봐. 지연아 걱정.. 마 겨울이 오면 봄이 오잖아”
나는 이불을 덮어드리고 부엌으로 가 물 한 컵을 따랐다.
식탁 위엔 반쯤 식은 죽 한 통.
뚜껑엔 김이 맺혀 있었고, 만져보니 싸늘한 공기 속에 죽도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이 집의 온기마저 식어버린 듯했다.
말라비틀어진 화분을 보자,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집안 벽을 붙잡고, “이 집에 영혼이 있다면 왜 우리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냐”며
쉬어버린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세상에, 그렇게 강하던 우리 엄마가 쓰러지다니.
씩씩했지만 속이 여린 엄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집에 가라... 아빠가... 오실 거야...”
방 안에서 엄마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죽을 먹여드리고, 아빠가 돌아오자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서 잘게요.”라며 작은방에 누웠다.
모레는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러 가는 날이었지만
하루만이라도 엄마 곁에 있고 싶었다.
아빠 말로는 중풍이라 했다.
다행히 심한 편은 아니어서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뻔뻔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빠가 미웠다.
곱디고운 집에서 책만 읽던 소녀였던 엄마를 강제로 데려가 삶의 위기마다 사라지곤 하던 사람이었다.
아빠가 가정의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하자,
육 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엄마는
우리 남매를 가난에서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바로 아래 남동생과 함께 작은 공장을 시작했다.
공장에 물이 새면 며칠 밤을 새워 물을 퍼냈고,
오빠와 나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은 채
항상 라면을 끓여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때의 냄새가 싫어 라면을 먹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견뎌낸 엄마와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싸워왔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생계를 잇기 위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그 사이, 어린 오빠와 나를 돌볼 시간은 당연히 늘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 엄마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 사건이, 하필이면 두 번이나 크게 발생했다.
나는 영양실조로 오랫동안 앓았고,
오빠는 혼자 놀다가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어린 나이에 뇌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엄마의 가슴에는‘죄책감’이라는 대못이 박혀 버렸다.
무슨 일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내가 이런 벌을 받는 거야...”
형편이 나아져도 죄책감은 평생 엄마를 옥죄었다.
하지만 오빠는 다행히 건강하게 자랐고,
나 역시 이렇게 삶을 잘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엄마는 우리에게 늘 미안해하신다.
우리는 조금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끝까지 우리를 지켜낸 영웅일 뿐이다.
하지만 엄마와 달리 아빠는 늘 집안에 화근을 가져왔다. 엄마가 힘들게 아파트를 사면 빚을 얻어 없애버리고,
다시 힘겹게 돈을 모으면 모두 뺏어가 버려, 흩날려버렸다. 버는 사람은 따로 있고, 까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반지하를 전전하며 이사를 스물네 번이나 다녔다.
하지만 엄마의 끈기도 대단했다.
이가 흔들려 빠질 만큼 고생하며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아빠의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욕망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번엔 엄마도 지쳐 있었다.
나이가 들고 기력마저 잃어버린 엄마는 더는 예전의 호랑이가 아닌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엄마의 인생에는 꽃필 날이 없었다.
끝이 없는 고난의 반복.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도는 집안의 갈등에 지친 오빠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며, 집을 떠났다.
나는 끝까지 엄마 곁에 남아보려 했지만,
결국 나도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나의 그 이기심의 끝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와 나는 평생 친구처럼 지내오며,
아빠가 저지른 일들을 함께 수습하며 살아왔고,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똥은 누가 싸고,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그녀의 위트 있고 씩씩한 여장부 같은 말이 지금 너무 그립다.
그런 영웅이 아프다.
그래서 나도 아프다.
고통이 지겹고 싫다.
이 모든 고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