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성애는 그에게 가장 강력한 족쇄였다.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 위였다.
눈부신 흰 전등 아래에서 미간이 찌푸려지고, 어리둥절한 채 습관처럼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배가 사냥꾼의 도끼에 찍힌 듯,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윽…”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려다, 손등에 꽂힌 링거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기억이 돌아왔다.
'그래, 오늘 오전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지.'
시선을 돌리니, 맞은편 침대에서 남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여보..'”
내가 힘겹게 부르자, 그는 특유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 깜짝이야.” 하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애처로운 눈빛 따윈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우리 아들, 어디 있어?”
남편은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따가 2층에 보러 내려갈 거야.”
“지금 볼래.”
“시간 돼야 보지. 세 시간 지나야 내려갈 수 있대.”
“우리 아가... 수술실에서 잠깐 봤는데, 계속 울고 있었어. 나 기절했던 거야? 아기는 괜찮아?”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우리 이쁜이 아닌 것 같아. 태명을 잘못 지었나 봐. 하하, 얼굴이 시뻘게서 찡그리고 있더라. 눈도 못 봤어. 하도 울어대서.”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외쳤다.
‘네가 매일같이 소리 지르고 슬픔만 줘서 그래.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었지만, 일어나지도 못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다.
남들은 태교 한다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뱃속의 아이에게 사랑을 전한다던데,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 같았다.
이제 나는 아기와 분리된 몸이 되었다.
아이가 없는 지금 이때라면 저 짐승 같은 남자가 날 괴롭혔던 지난날들을 꺼내며, 그에게 맞서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분노와 원망만 삼키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링거줄을 뽑아 던지고 벌떡 일어서는 상상만 하다, 힘이 빠져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드디어 우리 아들, 지우를 보러 내려갔다.
병원 복도 양옆의 나무 장식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지 예쁜 전구들이 반짝였다.
설레고 따뜻한 분위기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졌다.
간호사가 유리창 너머에서 지우를 안아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른 아기들과 달리, 지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표정은 잔뜩 찡그려 있었다.
울음으로 일그러진 입이 그토록 서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아픈 마음들이 너에게 다 전해졌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지켜주지 못한 엄마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목이 메어 유리창을 부여잡았다.
지우는 초음파 때부터 탯줄이 목에 감겨 있던 아이.
그때마다 미어졌던 가슴이, 이번엔 아예 부서져 버린 듯 아팠다.
내가 울며 몸을 비틀자, 남편이 짜증을 내며 내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병실로 끌려가며, 나는 마치 사형수가 유리벽 너머로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아이의 모습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유난 떨지 마. 진짜 피곤하니까.”
남편의 시뻘건 말이 귀에 박혀 오래도록 울렸다.
병실로 돌아와 간신히 침대에 누웠다.
너무 울어서인지 목이 바짝 말라서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물 한 잔만... 줄래?”
그는 또 폭발했다.
언제, 어떤 순간에 그의 ‘발작 버튼’이 눌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야, 내가 니 시종이야? 네가 떠서 먹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그는 옆에 있던 각티슈를 집어던졌다.
나는 더는 말할 힘도 없어 눈을 감고
지우의 얼굴만 떠올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들, 엄마가 지켜줄게.’
잠시 후, 그는 씩씩대며 입을 열었다.
“너네 집은 왜 그 모양이야? 딸이 애 낳았는데 아직도 안 와? 이러니 내가 대우를 해줄 수가 없지.”
“엄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오기 힘들어. 아빠도 옆에 계셔야 하고. 내가 오시지 말랬어. 나도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근데...말 좀 가려서 해. 각자 사정이 있잖아, 민준아. 오늘만큼은 그러지 마.”
나는 마치 말썽꾸러기 학생을 달래듯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뭘 쳐다봐. 궁상떨지 마. 진짜 지겨워. 괜히 결혼해서... 지 뿔도 없는 게.”
더는 상처받을 여력도 남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도 변할 거라 믿었던 나 자신이 한심하고, 또 가엾었다.
“민준아, 그래서 내가 일한다고 했잖아.
집 얻을 때도 내가 번 돈으로 반은 보탰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사람이라면...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몸 괜찮아지면 지우 보면서 부업이라도 할게.
네가 일하는 거 싫으면 내가 할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미워해. 제발...”
민준은 대꾸도 없이 겉옷을 챙겨 휙 나가버렸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한다는 건,
그만큼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짓밟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그는 폭력의 수위를 높였다.
경제적 학대와 모욕으로 나를 조여왔다.
아기와 분리되어 자유로워졌다고 믿은 건,
큰 착각이었다.
그는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절대 도망치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그는 그 사실을 이용해, 더욱 잔혹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