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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결혼은 포춘쿠키와 같다.

달콤한 기대와 달리, 알 수 없는 운명이 숨어 있는 결혼

by 김하루

결혼은 포춘쿠키와 같다. 달콤한 기대와는 달리,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운명이 숨어 있으며, 직접 겪어봐야만 사랑과 현실의 간극을 알 수 있다.


아들을 데리고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자동차 유리 밖으로 수없이 지나가는 앙상한 가지들이 보였다.

‘드디어 우리 아들과 집에 간다.’

기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했다.

주차를 하고,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내렸다. 남편은 아이를 보러 온 손님들이 선물로 주고 간 기저귀 보따리를 한가득 들고,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뭐가 이리 많아.”


그의 짜증 섞인 말투에 불꽃이라도 튈까 봐,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집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우를 따뜻한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고 기저귀를 확인했다.

아기 오줌 냄새가 고소하게 코끝을 스쳤다. 너무 예뻤다. 얼굴은 손바닥만 하고, 발은 인형처럼 작아 꼼지락거리고, 얇은 머리카락은 내 입김에 따라 가늘게 춤을 추었다.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그의 발가락을 입에 대고 ‘호~’ 하고 불며 입맞춤을 했다.


“오구, 내 아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아들은 대답 대신 입을 오물거렸다.

나는 그 작은 입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배고파.”

어느새 뒤에서 그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응, 그러네. 나도 배고프다.”


“너희 엄마는 미역국도 안 끓여다 주냐? 참 대단하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찬장 안에 사 두었던 밀키트 미역국을 꺼내 냄비에 부었다.


“진짜 대단하다. 또 산모라고 미역국은 사다 뒀나 보네?”


뒤돌아서 국자로 그 옹졸한 입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러면 분명 가만있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져 지우가 깰 게 뻔했다.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는 비아냥거리는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야, 너 귀먹었어? 아까부터 사람 말하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또, 발작 버튼이 눌릴까 싶어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응, 얼른 씻어. 밥 곧 할게. 나도 배고프다.”


다행히 그는 폭발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역국을 올려놓고 밥을 짓고, 김치와 멸치볶음을 꺼내고, 포장 김을 식탁 위에 올려놨다.

냉동고를 뒤지니 다행히 떡갈비가 있었다.

꽝꽝 언 걸 탕탕 치다 보니 팔목이 욱신거렸다. 손가락 관절도 아파왔다.

쓰러질 듯한 현기증에 싱크대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직 안 됐어? 배고프다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우가 ‘으엥’ 하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달려가 기저귀를 확인하고, “아, 배고프겠다.” 하며 급히 분유를 탔다.

지우가 분유를 빨아대는 모습에 홀려, 그만 남편의 식사를 잊고 말았다.


“야, 김지연! 밥은? 언제 줄 건데?”


“지금 지우 배고프잖아. 조용히 좀 기다려. 밥 되면 퍼서 먹어. 제발 목소리 좀 작게 해.”


“아, 진짜 너희 엄마는 왜... 사위 밥 생각도 못 하냐?”


정말 정신이 이상한 건지, 병든 우리 엄마를 왜 그렇게 붙잡고 늘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우를 재우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댁, 친정 그런 게 요즘 어디 있어? 지금이 조선시대야?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시간 나는 사람이 하는 거지.

나는 시댁에 뭐 하나 바란 적도 없는데 너는 왜 자꾸 친정 얘길 해?”


“너 지금 나랑 싸워보자는 거냐? 너희 친정이 똑바로 못하잖아. 아픈 게 대수야? 딸내미 애 낳을 때 일부러 아파?”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나는 그의 옷깃을 붙잡고 흔들며 울부짖었다.


“일부러 아픈 사람이 어딨어! 그만해, 이 나쁜 놈아!”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목을 한 손으로 꽉 쥐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또렷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해... 이 손 놔.”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뿌리치려 했지만 덩치 큰 그를 이길 수 없었고,

그는 나를 소파에 밀치며 말했다.


“까불지 마, 조그만 게. 죽고 싶어?”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운동선수였던 오빠와 자란 덕분에 이런 밀침은 익숙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더 건드려 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


그 눈빛이 전해졌는지,

“아우, 저 독기 서린 눈빛 재수 없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챙겨 옷을 입고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다시 몸이 아파왔다.

몸조리 대신, 몸살 대잔치를 치러야 했다.

일주일쯤 지나 그가 들어왔고, 나는 생활비를 통장에 넣어달라 했다.

그는 힐끔 보더니 말했다.

“보냈어.”

핸드폰을 확인하니 40만 원.

아이를 낳아도 나라 지원이 없던 시절이라, 분유를 사기도 벅찼다.


“이걸로 분유 사고 살림 다 하라고?”


“어. 알아서 아껴 써. 관리비는 내가 내줄게.”


“... 이건 너무하잖아. 그럼 네가 집에서 지우 보고 살림해. 내가 다시 원장님에게 전화해 보고 학원에서 애들 가르칠게, 내가 일하는 게 더 좋겠다.”


“아, 진짜 또 일 타령이야? 니 핸드폰 요금 내가 내주잖아.”


“그건 3만 원이고, 보험료는 내가 내고 있어. 처녀 때부터.”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아꼈다.


“아, 진짜 돈돈거리네. 돈에 환장했냐?”


그 순간, 숨통이 조여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벽 앞에서 나는 서 있었다.


“그럼 한 달에 60 줄게. 대신 나 차 바꾼다.”


그는 신용이 좋지 않아, 내가 임신 중이던 때 내 명의로 차를 샀다.

근데 이제 와서 또 바꾼다니, 어이가 없었다.


“나 외제차 알아봤어. 사업을 하려면 직원들보다 좋은 차를 사야 신뢰도가 생기는 거야.

네가 뭘 알겠냐? 월 200만 원, 그냥 네 명의로 사야 하니까 서류나 준비해.”



지우아빠,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들은 당신의 태도를 보고 신뢰하는 거야.

가치가 금세 떨어질 사치품에 그렇게 돈을 쓰고 싶으면, 생활비부터 제대로 주고 나서 얘기해.”



내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인심 쓰듯 말했다.

“그래, 니 명의로 차 바꾸게 해 주면 생활비 90 줄게. 분유랑 기저귀 포함이야.”


나는 더는 말이 통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지우 곁에 누웠다.

막막했다. 이렇게 철이 없을 줄은 몰랐다.

문이 벌컥 열리고, 그는 소리쳤다.


“야, 김지연! 고집부리지 마! 나 미치게 하지 말라고!”


지우가 꿈틀거리며 깰 듯했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더 큰소리로 말했다.


“서류 준비하라고!”


나는 벌떡 일어나 그를 거실로 데리고 나갔다.

TV 속, 부모 등골 빼먹는 막내아들이 꼭 저랬다.

창가에 앉아 깊은숨을 내쉬자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무엇을 해도 눈물이 흐르는, 이상한 병에 걸린 듯하다.


그는 핸드폰을 챙기고 현관문을 나갔다.


엄마가 그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나는 그 순리를 믿었다.

이 또한, 지나가는 소나기일 거라고.

창밖으로 고요한 오후의 햇살이 비쳤다.

먼지 한 톨조차 따스하게 감싸는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치 햇살이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봄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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