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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호텔에서의 하룻밤. (에세이 소설)

죄목: 누군가에게 기대를 품고, 기대려 했던 죄

by 김하루


스산한 밤 11시,

나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호텔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바깥의 더운 공기가 한순간에 끊기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따스한 조명 아래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 작은 호텔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족 단위로 많이 놀러 올 것 같은, 안전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루만 숙박하려고요. 얼마인가요?”


“네, 7만 원입니다.”


카드를 내밀며 계산을 마쳤다.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우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지금쯤 지우는 잘 자고 있을까?

혹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건 아닐까?

별별 상상이 꼬리를 물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죄책감이 자리했다.


방 안은 따뜻한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얀 커튼이 반투명하게 흔들리며, 창밖의 불빛을 은은히 받아들였다.

하얀 시트 위의 커다란 침대는 마치 나에게 ‘누워서 너도 좀 쉬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책상 옆의 스탠드 조명이 포근한 그림자를 만들며, 조용히 공간을 감싸 안았다.


“좋다...”


낯설지만 기분 좋은 감정이 천천히 밀려왔다.

마치 여행을 온 듯한, 어딘가로부터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

커튼 사이로 살며시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의 야경이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잠시 상상에 빠졌다.


‘그래, 나는 성공한 여자 CEO야. 출장으로 이곳에 왔어. 라스베이거스? 아니, 뉴욕이 딱이야.’


혼잣말을 내뱉으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곧 허공에 스며들었다.

흥미로웠던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고,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대충 씻고 나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포근한 이불을 덮어 보았지만

조용한 방 안이 쓸쓸하게 느껴져, 일부러 시끄러운 토크쇼를 틀어놓았다.

웃음소리가 방 안을 떠다녔지만, 그 어떤 유쾌함도 마음속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



불안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채, 핸드폰을 들었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화면 위로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진동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보지 않으려 했지만, 손끝은 이미 화면을 밀고 있었다.

남편의 메시지.

한 줄, 또 한 줄.

분노와 저주로 가득한 문장들.

숨이 막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단 하나,

‘지우는 괜찮은지.’ 그 말이 없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불안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베이지색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연회색 잔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터벅터벅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호텔 창문 유리 너머로 도심의 불빛이 번져 있었다.

그 빛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문을 밀고 나서자 습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저 멀리서 편의점 불빛이 반짝이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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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사랑과 인간관계, 그리고 삶에서 얻은 작은 지혜들을 글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사업가. 주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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