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강한 척, 당당한 척 그렇게 반과부로 살아가는 동안
지우는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아빠를 닮아 또래보다 훌쩍 커서, 내 곁에 나란히 서면 어느새 내 시야를 가릴 만큼 자라 있었다.
아직은 어린데도, 그 옆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음 한쪽이 묘하게 든든해졌다.
조금은 어설프게 어깨를 펴고 걸어가는 모습이, 막 힘을 배운 아기 호랑이처럼 보여서 괜히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은 남편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지우가 고열에 시달리던 밤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은 내 절규를 비웃듯 차갑게 끊어졌다.
그 뒤로도 그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가 일본으로 갔다 하고, 또 누군가는 대만으로 향했다고 했다.
소문은 늘 모호했고, 그 어떤 말도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짐을 들고 바람난 여자에게 향하던 그의 마지막 뒷모습뿐이었다.
시간은 다행히도 어느 정도의 치유를 품고 있었다.
지우와 함께 밥을 차려 먹고, 밤이면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하루. 이런 반복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아마 모든 걸 내려놓고 나서야, 내 인생에도 생각보다 많은 감사가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원망이 밀려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왜 나만, 왜 우리만...’
그 말들이 마음속을 오래 맴돌았지만,
이제는 불만보다 감사를 선택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안다.
예전보다 단단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아니, 단단해졌다기보다는
‘견뎌내는 법’을 조금 더 능숙하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허망한 마음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쓸쓸함은 예고도 없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조용히 자리를 잡곤 했다.
사실, 나는 주말이 두렵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나는 지우와 함께 어김없이 공원을 찾았다. 주말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가다 보면, 새로운 곳에 가서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와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더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공원을 걸을 때
손을 꼭 잡고 걷는 부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속에서 그들의 미소는 더욱 또렷해 보였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퍼질 때마다
마음을 건드렸다.
비교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고들 하지만,
늘 비어 있는 내 옆자리와 누군가의 곁을 가득 채워주는 모습이
자꾸만 나도 모르게 대비되었다.
‘서로 저렇게 기대며 살 수 있는 짝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멍하니 밀려오던 순간,
지우의 작은 손이 내 손을 가만히 건드렸다.
그제야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의 체온이 조용히 내 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괜찮다고_ 그렇게 마음을 살짝 감싸 안으며,
하루하루를 조용히, 바람처럼 흘려보내며 살아냈다.
"엄마, 아빠는 미국에서 언제 오는 거야? “
지우는 드라마 속 흔한 이야기들을 마치 현실처럼 믿으며,
아빠가 미국으로 일하러 갔다가 곧 돌아올 거라고 순수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은 때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마음 깊은 곳을 살짝 스치며 아리게 했다.
“우리 지우왕자님~ 아빠 보고 싶었어요? 저번에 TV에서 봤지? 코로나 때문에 아빠가 비행기를 못 타서 못 오셨잖아. 그래도 우리 둘이 씩씩하게 지내고 있으면, 아빠가 곧 올 거예요. 미국이 이렇게 멀다 보니까, 엄마도 답답하네. 으그...”
나의 거짓말은 어느새 생활이 되었고, 이제는 조금 더 리얼하게 연출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꿈은 배우가 아닌데, 눈치 없는 인생은 나를 훌륭한 배우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덕분에 곧 배우상, 심지어 감독상까지 휩쓸 기세였다.
나의 자격지심일까.
항상 내 외로움보다, 지우가 느낄 외로움이 더 걱정되었다.
아이의 웃음 뒤로 스며드는 잠깐의 무표정을 볼 때마다,
그 작은 틈마저 내 가슴속에 서늘한 얼음조각처럼 스며들었다.
외롭고 갈 곳 없는 주말을 간신히 보내고, 평일에 지우가 드디어 학교에 간 날,
나는 드디어 말이 통하는 유일한 안식처, 엄마를 만나러 공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블랙커피와 쿠키를 사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 철퍼덕 의자에 앉았다.
"엄마야, 나 힘들었어. 이제는 더 이상 근교에는 갈 곳이 없수다. 엄마 시간 되면 지우 데리고 1박 2일 여행 가자. 둘이 가면 쓸쓸해서 미치겠어. 엄마가 지우 아빠 하루만 해줘라, 잉~"
"어우, 한 번 삼촌한테 공장 일 맡겨야겠네. 지우랑 이제 많이 놓아줘야지. 우리 공주님, 왕자님 심심하겠다. 이제 거래처도 많이 안정됐고, 그래,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거 우리도 자주 놀러 다니자."
"진짜? 약속했어. 손가락 걸고 약속하고 지장 찍어줘."
"얘는 야, 공증까지 해주랴?"
오랜만에 웃음소리에 내 외로움은 잠시 잊혔다. 역시 어른은 어른과 수다 떠는 게 제일 행복하다.
"잠시만, 지연아."
엄마는 사무실 모서리에 놓인 작은 금고를 뒤적이며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엄마, 오래된 금고 좀 버려요. 넣을 것도 없으면서, 진짜 누가 보면 굉장한 여사장님인 줄 알겠다니까요. 골드바라도 쌓아둔 줄 알겠네? 들여다보면 안에 커피믹스랑 오래된 장부, 못 버린 몽당연필뿐인데, 도둑이 금고 훔쳐가면 허망하겠다."
나는 엄마를 놀리며 의자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다.
공장 매연 냄새는 내게 엄마의 향기였고, 컨테이너 박스로 대충 만들어진 사무실은 엄마와 만날 수 있는 내 작은 천국이었다.
그때, 엄마가 내 손에 봉투 하나를 꼭 쥐어 주셨다.
“이제 다 갚았다.”
봉투 안에는 오래전에 내가 건넸던 돈과,
엄마가 마음속 깊이 오래 품어두었던 미안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봉투를 쥔 채 당황스러웠다.
“엄마, 이건 받을 수 없어. 나는 엄마가 키워주신 게... 그게 평생 갚지 못할 더 큰 빚이야.”
엄마는 고개를 조용히 저었다.
“자식이랑 돈 거래라도, 약속은 약속이지. 오래 걸렸네. 네 종잣돈, 이제 돌려주는 거다. 네가 공장 부도 막는 데 큰 도움 줬잖아. 당연히 받아야지. 네 돈인데... 일찍 못 돌려줘서 미안해. 집을 사든, 작은 일을 시작하든... 엄마는 믿어. 우리 지연이는 뭐든 할 수 있어."
"엄마..."
"근데 부동산은 네가 잘 아는 곳에 투자해.
모르는 데는 위험하다.”
그 말을 끝낸 엄마는 조용히 웃으셨다.
마치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마친 사람처럼...
혹시, 함께하지 못할 당신의 시간을 미리 알고 계셨던 걸까.
건강하시던 엄마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피곤함을 호소하시던 날들이 늘어났고,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다.
진단명은 혈액암이었다.
급작스러운 판정에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엄마는 곧 의식을 잃으셨다.
나는 아빠와 오빠와 번갈아 가며 병실을 지켰다.
기계음이 밤새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그 사이로 엄마의 숨결이 희미하게 섞여 들렸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차가워진 손끝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질까 싶어
두 손으로 천천히, 꼭 감싸 쥐었다.
나의 하나뿐인 엄마를 보내며...
평생 꽃길 하나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분이셨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는
하얀 국화꽃 속에서 고요히 누워 계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평생 소처럼 일만 하다가 떠나버린 엄마의 인생이 원통했다.
‘엄마, 이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곁에서 푹 쉬세요.
그리운 사람들 곁에서...
이젠 아프지 말고 편히 주무세요.
현생은 너무 고단했으니까.
엄마, 우리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이제 이 세상에는
나를 따뜻하게 받아줄 품이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공허했다.
힘든 마음에 함께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스쳤지만,
지우가 있었다.
이 아이가 나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러운 이 삶을
억지로 다시 살아내야 했다.
엄마와 나눴던 사소한 대화들,
그 작은 웃음들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며, 대답 없는 그녀에게 말했다.
“엄마, 하늘에서 먼저 쉬고 있어. 난 우리 아들 지키고, 조금 늦게 갈게. 사랑해 영원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