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간 자리에서

라일락의 오후

by 정서하

“무슨 생각해?”

진아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냥... 오래된 기억.”

“윤우 생각?”

나는 웃었다.


“이상하지, 얼굴을 가물가물한데

그때의 공기나 냄새는 아직도 선명해.”


“그런 게 첫사랑이지.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 사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했다.

그 시절의 그는 이제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햇살의 온도와 버스 안의 공기,

손끝의 떨림만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진아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이제 갈까?”


나는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일어섰다.

그때 테이블 위로 라일락 꽃잎 한 장이 떨어졌다.

나는 그 꽃잎을 살짝 집어 노트 사이에 끼웠다.


노트 첫 장에는 ‘버스’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봄이 지나도, 나는 그 봄을 기억한다.


카페 문을 나서자 햇살이 눈부시에 쏟아졌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소리 없는 이름은 바람 소그로 스며들어

라일락 향기와 함께 흩어졌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며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좋아한다는 건 누군가를 붙잡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닮아가는 일이라는 걸.

봄은 또 돌아왔고,

이제는 놓치지 않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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