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피는 봄

by 정서하

며칠째 봄비가 이어졌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자,

거리는 유리처럼 맑게 씻겨 있었다.


나는 출근길 대신 잠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냥 오늘은 조금 더 걷고 싶었다.

골목 끝에 새로 생긴 꽃집 앞에서 발을 멈췄다,

문 앞 진열대에는 라일락이 가득했다.

그 향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향 좋죠?”


꽃집 주인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라일락 냄새.”


주인은 작은 꽃송이 하나 꺾어 내게 건넸다.

“오늘은 그냥 가져가세요. 비 온 뒤 첫날이니까.”


비 온 뒤 첫날,

그 문장은 묘하게 ‘다시 시작’ 이란 말처럼 들렸다.

사무실에 도착해 라일락을 물컵에 꽂았다.

창가에 두자 향이 천천히 퍼졌다,

동료가 지나가며 말했다.


“서하 씨, 오늘 기분 좋아 보여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봄이 와서요.”

그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예전엔 봄이 오면 괜히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 불안이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창밖엔 햇살이 번지고,

비에 젖은 나무들이 반짝였다,

하늘은 아직 흐렸지만, 그 안에서 새잎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모든 게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서 천천히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퇴근길 버스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햇살이 기울여 창문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예전처럼 손잡이의 차가움을 느껴보았다.

기억 속의 봄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리움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건 이제 상처가 아니라 따듯한 추억이었다.

버스가 교차로를 돌 때

창밖으로 라일락 꽃나무가 보였다,

나는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안녕, 그리고 고마워.”

그 말은 이번엔 슬프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그 시절의 모든 것들에게

조용히 보내는 인사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봄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라일락 향이 스쳤다.


아주 오래전 그 봄의 냄새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 봄은 끝난 게 아니라 그저 내 안에서 다른 계절로

이어지고 있었음을


봄비가 그친 거리 위로 노을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반짝이며 흘러갔다.


는 천천히 걸었다.


손 끝에 닿은 바람이 따듯했다.

어느새 봄은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봄이 지나간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