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백
햇살이 강하게 내리던 오후였다.
사무실은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공기가 뜨거웠다.
창문에 매달린 풍경아 작게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지호가 내 자리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서하 씨, 점심 먹었어요?"
"아직요. 일 좀 마무리하느라."
"그럼 같이 나가요. 근처에 조용한 식당 있어요."
나는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습하고,
지호의 셔츠 소매는 살짝 접혀 있었다.
햇빛이 반사되어 손목에 닿은 시계가 번쩍였다.
그 빛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식당은 오래된 나무문을 지나 작은 정원 안쪽에 있었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마치 숨겨둔 여름의 피서지 같았다.
창가에 앉자 햇빛이 살짝 내려앉고,
그 위로 부드러운 선풍기 바람이 지나갔다.
"여기 진짜 좋네요."
"그죠? 저는 이런 곳이 좋더라고요. 시끄럽지 않고 마음이 좀 쉬는 곳."
그는 물 잔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서하 씨도 그런 사람 같아요. 조용한데 편하게 만드는 사람."
나는 살짝 웃었다.
"그럼 지호 씨는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는... 누군가의 평화가 되고 싶은 사람."
그 말이 유난히 깊게 들렸다.
식당 밖으로 매미 소리가 멀게 퍼져 있었다.
짧은 여름의 한가운데,
우리 둘의 시간은 묘하게 느리게 흘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바깥공기는 열기로 가득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시원했다.
지호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서점 가보세요. '빛의 기록'
사진전 열어요."
"가보고 싶어요. 지호 씨도요?"
"당연히요. 같이 가요."
그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대답이 늦었다.
"좋아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가 웃었다.
"그럼 약속이에요."
그날 밤 나는 집에서 노트를 펼쳤다.
'빛의 기록'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지호의 미소, 식당의 창가,
그리고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던 햇살 조각까지.
나는 그날의 장면을 한 줄로 적었다.
"마음의 여백이란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며칠 뒤 사진전 날.
서점 2층의 전시장은 여름빛으로 가득했다.
지호는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진마다 다른 빛이 걸려 있었지만,
그와 함께 선 순간의 공기가 가장 선명했다.
"이 사진 좋아요."
그가 가리킨 건,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을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머무는 곳, 그게 사람의 마음일지도 몰라요."
지호가 내 쪽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지금 제 마음에도 머물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시간의 소리가 멎은 듯했다.
사진전의 사람들, 바람, 햇살- 모든 게 배경으로 멀어지고,
그의 말만 또렷하게 남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웃었다.
그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말없이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잔 안에서 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여름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
창밖의 나무들이 빚에 젖어 흔들렸다.
나는 지호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과 라면, 새로운 계절도 괜찮을 것 같아.'
햇살이 창가를 스치고,
그 빛이 우리 손등 위로 번졌다.
서로 다른 그림자가,
그 순간엔 하나의 색으로 겹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