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지

나는 공황장애가 있다.

by 정서하

나는 공황장애가 있다.
예전에는 이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숨겨야만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마음의 병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하게 되었다.
달갑지는 않지만, 내 삶을 함께 걸어온 동행자처럼.

불안장애와 광장공포증도 있다.
이 병들은 24년 전, 내가 20대 초반이던 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 앞에서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외롭고, 무엇보다 여린 나이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불안은 마치 내 안에 둥지를 틀어 버린 듯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러지? 이게 뭐지?’
아무 이유 없이 몰려오는 공포, 책 한 줄 읽히지 않는 집중력,
밤마다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불면증,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지는 대인기피증…
그 모든 증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는 그 혼란을 무려 10년이나 겪었다.
저혈압으로 인해 몸은 자꾸 가라앉았고, 마음은 자꾸 뒤집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오래 버텼다.
그 시절은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졌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릴까 봐 조용히, 그러나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지금 내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내 증상들을 담담히 글로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와… 그거 엄청 힘들다던데… 괜찮아?”
혹은
“그거 별거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푹 쉬면 나아.”
그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나의 20년을 온전히 설명해주진 못한다.

나의 첫 공황발작은 지하철도 버스도 아닌,
너무나 평범한 장소인 횡단보도에서 찾아왔다.
햇빛이 밝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나만이 숨을 쉬지 못하고, 세상이 흐릿해지는 순간을 겪었다.

지금도 그 횡단보도를 지나면
가슴 깊은 곳이 살짝 떨린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여전히 발작의 그림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발작이 온다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하철이 편하다.
정작 힘든 건 열린 공간, 바깥세상이다.
길을 걷다 갑자기 다리가 굳어버리고
한쪽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음을 떼는 일.
그게 나에게는 훨씬 더 낯설고 버거운 순간이다.

내가 보기엔 체력도 바닥이고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의사는 다른 말을 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나는 놀랐다.
정말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병원까지 30분을 걸어온 것이었다.
그날 의사의 한마디는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오래 기다린 작은 불빛 같았다.

처음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건 2011년 겨울.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는 어느 순간 문득,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정말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종이 한 장처럼 가벼우면서도 강한 예감을 느꼈다.
그 본능이 나를 병원까지 데려갔고
그 선택이 결국 나를 살렸다.

그렇게 공황과 친구가 된 지도 벌써 14년째.
우리는 이제 서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조금은 안다.
때로는 나를 흔들고,
때로는 나를 주저앉히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두렵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공황은 나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또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법,
나만의 속도로 걷는 법,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감정의 변화까지도
포착하는 법을.

나는 오늘도 공황과 함께 걷는다.
도망치지 않고, 억지로 떨쳐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이 친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나와 내 그림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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