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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럭키비키. 걍 해! 일체유심조!

이제 만나러 갑니다_공룡을 ridgeline!

by w t skywalker

회사 동료들끼리 의기투합으로 똘똘 뭉쳤다. 누군 뭉쳐야 찬다고 하는데, 우리는 뭉쳐야 탄다. 설악산 마저도. 뭉치면 산도 쉽게 타니까, 뭉쳐보자고 서로 뭉쳐서 의견을 꼭꼭 뭉쳐봤다. 쉽게 뭉쳐질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더 너무 쉽게 뭉쳐졌다. 이걸 unanimity 만장일치라고 하지. 아마.

일 순간, 공산당이 돼버렸잖아!

민주주의여, 저만큼 물러가라. 훠이, 훠이!




설악산이다. 이전에 오색에서 대청봉을 구름에 달 가듯이 지나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심히 보편적인 루트를 밟아본 적이 있었다. '08년도에 PI 구축팀으로서 ERP를 회사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업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그 기념으로 팀 전체가 의기투합하여 설악산을 등반하게 된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설악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야말로 지겨울 정도로 걷고 또 걸은 기억으로만 나의 전두엽이 온통 도배되어 있다.

지겹기가 한이 없고, 괴롭기도 한이 없던 그 설악.

드디어 설악산 등정이 시작되기 직전, d-day 하루 전이다. 맘 단디 먹고, 준비물 빠짐없이 꼭 챙기라. 증신(벌써부터 철자가 흔들린다)도 바짝 차리고. 알겠지비이! 예, 썰! 치 솔, 음 다음은 뭐였더라?

에라 모르겠다. 아, 마데카솔이다.


내일 설악 공룡과 뜨겁게 한 판하고서,

과연 글을 올릴 수 있으려나?

발은 온 데 간데없을 게 틀림없고,

손은 어떨까?

등산 스틱을 짚느라 부들부들 떨릴까?

에라 모르겠다.


내일 두고 보시라.

글이 올라오면 악소리 내던 설악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이고,

글이 안 올라오면 악 소리 지르다 성대가 맛이 가, 반 죽음/ 초 죽음/ 빈사상태일 것이 확실하니

응급 구조해 주시라.

함 부탁한데이! 부디 배신 때리지 마시고, 다음 편도 궁금할 터, 저에게도 다음 야그를 계속 이어갈 책임이 있으니께롱. 혹시 알아? 내 야그가 자꾸 자꾸만 기다려지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롱. 긍께 살려주이소~잉! 다시 한번 더 당부한데이.

숙소는 강릉 시티 호텔 근처 어딘가 일 것이다!

적어두고 기억해 두쇼~잉. 모두들 전두엽들은 가지고 계실 것이니. 장식은 아닐 테고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에서 한국의 명산 three peaks를 하루 24시간 내에 주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적이 있었다. 한라산에서 지리산을 거쳐 악소리가 절로 나오는 설악산까지 하루 만에 내려가고 또 올라가는 시지프스를 위한 또 하나의 천상 코스이다. 도중에 천국으로 갈 수도 있는 천국의 계단도 나오니 흥미진진하다.


드디어 갈 수 있다. 나도 희열에 찬 악소리를 내보고 싶다. 티라노 사우러스 공룡의 등허리를 휘어잡고서, 공룡의 숨소리인지 내 숨소리인지 분간이 되지는 않겠으나, 하여간 가까이서 그녀의 숨소리를 꼭 듣고 싶다. 공룡의 가슴에 깊게 파인 클리비지도 살짝살짝 건너뛰어가며 오르락내리락 달음질도 하고, 더 올라가면 쨘! 하고 나타나는 등 주름에 움푹 파인 크레바스까지도 곁눈길로 살짝살짝 피해 가면서, 신밧드가 양탄자 탄 듯이 '야호~'라고 소리도 맘껏 내질러 보고 싶다. 아차 하면 천국이 아닌 골로 간다.

그럼, 여러분, 날이 차요. 감기 조심들 하세요! 코리투살. 펜잘도 챙기세요. 이건 협찬 글 아니에요. 믿고, 구매하셔도 돼요.


곧, 팀내 산행 사전미팅이 시작된다. 이미 기차는 떠났다. 되돌릴 수도 없다. 걍, 해!

그럼, 부디 살아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빠이! 빠이!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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