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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만나러 갑니다_ 인생

Towangseong Waterfall !

by w t skywalker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 자체가 우리네 인생을 투영해 주는 것 같은데요. 속에서도 작지만, 또 다른 오르내림이 있어(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라는 김종신의 노래가 또 생각나네요. 돌려 막기인 건가? ㅋㅋ)




공룡능선에는 약 5개 정도의 피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건 마치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와 일대일 대응(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첫 피크. 단숨에 쉼 없이 올랐습니다. 그저 상쾌하고, 기분은 째졌습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만나 오이를 건네주었던 호주 변호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를 시작했답니다. 몸집은 상당히 좋았으나, 거기에 비해 행동은 좀 둔했습니다. 피크를 내려갈 때, 몸치의 진면목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둘 피크. 힘이 남아돌아 힘차게 보무도 당당하게 피크를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반대편 오색에서 오시는 분들이 놀라 '이 공룡 천지 산중에서 뛰어다니시는 분이 있네!'라고 감탄을 합니다. 저는 멋쩍어 "아닙니다. 여기서만 뛰어가는 겁니다"라고 대꾸하며 지나쳐 갑니다.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동료들보다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낙오한 듯하여 호주 변호사와 이별을 고하고, 서둘러 만회하려고 뛰어가는 중입니다만.


셋 피크. 힘들여 가는 도중에 아기공룡 둘리를 만난 곳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을 낑낑대며 혼자 오르다 그만 산행 동반자와 뜻밖의 조우를 한 겁니다. 인생도 그렇지요. 저도 아내를 이 시기쯤에 만난 거거든요. 둘리와의 만남이랄까요? 하하. 아내가 이 글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궁금해! 둘리와 만남이 아니라, 단순하게 둘이 만난 거니까요.(등짝 스매싱 피하기 권법 시연)


넷 피크. 힘은 들지만, 편안한 상태로 지나가는 중입니다. 팔순 할아버지를 만나 감탄도 발하게 되고, 근육 부족으로 인한 공룡능선 등반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할아버지에게 힘내시라고 '힘드시니 천천히 가시면 되겠다'라고 말벗과 응원도 해드리면서 함께 동행하며 천천히 피크를 넘어가는 중입니다. 40대로써 인생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되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 나만의 걸음과 완만한 보폭으로 등정에 오릅니다.


5 피크. 이곳에서는 피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삶의 고통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저 아득하기만 하고, 기억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답니다. 인생무상을 느끼기에도 적당한 시기입니다.

아, 있었네요. 신선봉이라고 오르다 보니 경치가 빼어나 마음을 뺏기기도 했습니다. 살다 보면, 미모의 여인들에게 마음을 뺏길 수도 있으니까요.

마음을 뺏긴 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신선이 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인생도 최고조로 올라가 인생 절정기인 황금기이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골로 가기 쉬운 나이대니 까요.




어쩜 이리도 인생의 생애 주기 그래프공룡능선 피크 배열표가 절묘하게 들어맞을 수가 있나요! 저만 그런가요? 저만 착각의 늪에 빠진 건가요? 각각의 연령대별로 만나게 되는 인생의 다양한 높낮이를 가진 굴곡을 스펙트럼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진) 평시에는 건폭인 토왕성폭포가 가뭄에 이어 긴 우기를 통해 물을 가득 품고서 수직으로 활강하면서 폭포길을 내려가는 웅장한 모습!

(위 사진은 동료로부터 무상 제공받은 선물)



등산은 발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임을 절감한다. 고로, 근육 운동보다 유산소 운동이 먼저이다. 러닝 머신이나 달리기가 하체운동의 최고봉인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보다 우선시 된다. 등반에는 유산소가 가장 먼저 확보된 이후에 근육이 협응 해줘야만 장거리 산행에 최적의 도움이 된다. 산은 천천히 오르는 게 최선이고, 서둘러 오르다 보면 탈 나기 십상이다. 두근두근 심장 바운스와 절뚝절뚝 다리절음을 순차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아기 공룡과 친해지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그 사이 마운틴 하이도 두 번씩이나 느끼게 되는 행운도 누렸다. 피크에서 한참을 내려다보던 절벽들을 하산하면서는 우러러보게 되는 인생 역전의 짜릿한 맛을 역으로 보기도 했다.


곰곰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등반 자체가 하룻밤 꿈과도 같은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으로써, 인생사에서 만날 수 있는 갖가지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모습들이 적재적소에 흠뻑 스며들어 있어 따분할 겨를이 전혀 없다. 등반과 인생이 마찬가지다.


산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내가 먼저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고 나니 곧이어 산도 사라지고야 만다.

산을 오르면서는 무심코 오르게 되고, 산을 내려오면서는 마냥 아쉬워 쉬이 내려오지를 못한다. 처음 입사해서는 위로 또 위로 오르기만 하다가, 정년이 가까워지면 그동안 못 오른 피크를 바라보기보다는 일을 그만두게 되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커, 우두커니 앉아 퇴직이라는 큰 관문을 응시하다가 때로는 허한 마음에 멍하니 우두커니 서 있기 십상이다.




시인 고은은 이런 마음을 이름처럼 곱게도 '그 꽃'

이라는 시로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너무나도 함축적이어서,

남자들에게 너무나 좋은데,

(여자들은 평소에 잘하니까)

뭐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그래서, 졸필은 그저 여기서 확 꺾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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