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매달린 추억 하나

(경남 수목원을 다녀오다)

by 박기숙

완연한 봄날 세 자매는 엄마를 모시고 경남 수목원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식물들과 나무 이름들을 불러 보면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다. 높게 뾰족이 솟은 나무 끝자락에 하늘이 열린다. 분홍색 점퍼를 입은 엄마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연분홍 미소가 살포시 번진다. 조심스레 막내 손 잡고 걷는 모습이 짠하다.


한 달 전 막내 여동생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교회 화장실에서 쓰러졌으며, 현재 의식 없이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오후 교회 찬양 연습 중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향했다. 조용한 차 안에 내 심장 소리만 방망이질했다. 다행히 구급차 안에서 의식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감사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우린 검사 결과만 애타게 기다렸고 다행히 위급한 상황은 지나고 있었다.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 상태였다. 그래도 여든일곱의 이런저런 병명에 중환자실에서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장시간 마음 졸임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에 만약 집에 혼자 계셨다면 이렇게 우린 집으로 각자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엄마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참 잘하셨다.

점차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고, 며칠 후 퇴원하면서 산청 집으로 엄마를 모시게 되었다. 아이들 이유식 준비하는 맘으로 이것저것 먹거리를 준비했다. 통 입맛이 없으신 엄마를 위해 끼니마다 나름 준비했지만 드시는 것은 소량이다. 늘 생활하는 공간이 누구나 가장 편한 곳이다. 딸 집에 있다 보니 계시던 곳이 그리운듯하다.


마산집으로 모시기 전 목욕탕에 갔다. 아직 허리가 아픈 나는 세신사의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예약이 안 된 관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목욕탕 안에서 혹시나 어지러워하시면 어떡하나 맘 졸렸다. 알몸으로 구급차를 불렸을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온갖 상상을 하면서 온전치 못한 모녀는 어떻게 씻고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대중탕을 이용하고 일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한없이 감사했다.


일단 요양등급 신청부터 해서 도움을 받기로 하고 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여 접수했다. 수 일내 조사원이 집으로 갈 거라 하신다. 혼자인 엄마를 위해 홈 캠도 설치하고, 이웃 아파트 이모님들께 작은 뇌물을 들고 특별 부탁까지 드렸다. 평소 엄마의 별명은 이 박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다.

며칠 후 건강보험 공단의 조사원이 집을 방문하였다.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하나 혹시나 등급이 안 나올 것 같아 미리 엄마에게 너무 아는 척하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그러겠다고 알겠다고 분명히 결의를 보이셨다.


“어머니, 오백원짜리 일곱 개가 있으면 얼마일까요?”

“삼천 오백 원” 망설임이 없다.

“그럼 십 원짜리 이 백 개는 얼마일까요?”

“이 천원”


놀랍다. 십 원짜리 질문은 나도 한참을 생각했는데 이 박사는 척척 이다.

일부 생활의 불편이 있으나 치매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조사원은 혹시 등급이 안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평일의 식물원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묻은 꽃향기 날리고 있다.

온통 초록인 이 순간을 지나칠 수 없어 사진 찍기 놀이에 빠진다. 우리 셋은 엄마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고 이 박사는 최선을 다해 찍어 주신다. 너무 긴장하신 탓인지 하나, 둘, 셋! 하고는 힘차게 흔들며 누른다.


아차, 동영상이다! 엄마는 분명 ‘짤깍’ 소리가 났다고 우기신다.

반복 연습 끝에 세 자매의 웃음 가득 순간이 저장된다. 오후 한나절 유유자적 식물원을 걸으며 엄마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 한 자락이 나무에 매달린다.


매달린 추억 하나 해마다 바람 타고 분홍 꽃향기 날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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