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반도체 공장(Fab)은 하루 종일 돌아간다.
그 말인즉슨 일하는 노동자들도 하루 종일 일터를 비울 수 없다는 말이다.
학생 때에는 밤에 쉬고, 주말에도 개인 시간을 가지는 직장인의 삶이 너무도 당연해서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없는 게 당연해진 삶이 되었다.
주말에 쉬고, 저녁에 근무 안 해도 되는 또래 직장인들을 보면 신기한 느낌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아, 우리는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일하지’라는 생각이 번쩍 든다.
엔지니어의 하루는 어떨까
보통 아침에 출근하면, 데스크탑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텀블러를 씻으러 간다.
커피(**중요)를 타고 자리에 와 앉은 다음, PC 비밀번호를 치고 로그인한다.
밤 중에 쌓인 메신저와 메일을 간단히 확인한다. (보통 메일은 수십 건, 메신저는 샐 수 없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요즘은 1일 1미팅이 기본이 되어 버렸다. 내가 준비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에는 딱히 준비할 게 없다.
그렇게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메뉴는 다양한 편이지만, 마치 로봇이 만든 듯 매일매일 음식 맛이 비슷하다.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맛이 난다. (물론 식당 여사님들과 조리사님들께서 위생과 맛을 위해 항상 수고해 주신다)
그리고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비슷한 흐름으로 오후가 흘러가고, 퇴근 시간 전 다음 근무자를 위한 업무 연계 작업을 한다.
야근이 없으면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된다.
나의 직무는 조금 특이하다. 정말 다양한 팀들과 함께 일한다.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협업이 필수적인 업무가 대부분이다.
며칠 연차라도 내고 자리를 비웠다면, 수북이 쌓인 메일과 메신저는 반드시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그중 어떤 게 나의 업무와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스크롤보다 빠른 눈동자로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한 뒤 원래의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지난 목요일에 놓친 업무가 생각났다.
브런치의 순기능이다. 하하
하...
사실 오늘도 일을 하러 간다. 그렇다 지금은 토요일 저녁이다.
3-4시간 뒤면 나는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오늘 오후에는 결혼식에 다녀왔다. 회사 동료 결혼식이었다.
매일 보는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반겨줬고, 오늘 일하러 가면 또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겁을 주었다.
윽, 속이 좀 안 좋아졌다. 오늘은 잠도 못 자고 밤 근무를 하러 가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한다.
밤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기 때문!
다만, 주중에 못 한 밀린 업무들을 해야 해서 조금 일찍 출근할 예정이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시름시름 병을 앓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Ideation 하는 과정을 즐긴다. 깊은 생각에 잠겨서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난 회사 일이 나름 재밌다.
하지만 회사가, 일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권다이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는 내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커리어도 내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일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면의 소리가 아닌 외부의 소리, 힘에 의해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글을 쓰는 것, 강아지와 노는 것 등..
이런 단순한 것들만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근사하고 멋진, 대단한 행위들은 내 것이 아니란 느낌을 받는다.
남들이 만들어둔 성공과 부의 목표가 이제는 와닿지 않나 보다.
말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다.
그렇다 이게 엔지니어의 글솜씨다. 하하
나름 협업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글솜씨를 보니
문득 그분들은 나와 함께하는 업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실지 궁금해진다.
물어보고 싶다.
@@@@ 담당자님,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