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킥 키커로 나선 선수는 쏘니였다.
쏘니는 발 밑의 인조잔디를 몇 번이고 다듬은 뒤 공을 내려놓았다. 밴쿠퍼 골키퍼 다카오카 요헤이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밴쿠버 선수들이 벽을 세우고, 심판이 벽 거리 라인을 정하느라 잠시 지체되는 사이 5만 3천 명의 관중 모두가 숨을 죽였다. 쏘니의 국대 셔츠를 입은 아들과 나도 TV에 눈을 박고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위치에서, 공 앞에 선 쏘니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침묵의 2분이 흘렀다. 바람, 공의 위치, 몸의 중심, 킥의 각도, 이 모든 걸 한순간에 계산하는 그 짧은 순간, 쏘니는 숨을 고른 뒤 오른발로 공을 감아 찼다. 공은 날카롭게 골대 왼쪽 상단을 향해 휘어들어갔다. 밴쿠버의 골키퍼가 막으려고 몸을 날렸지만 손 끝에 닿지 않았다. 골망이 흔들리고 관중석은 폭발했다. 우리의 입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후반 추가시간 5분에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쏘니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벤치로 달려가 코치와 선수들을 껴안았다. 그리고 부앙가와 함께 ‘흥부듀오’의 시그니처 골 세리머니를 하며 득점의 기쁨을 나누었다. 말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쏘니의 프리킥은 단순한 골 그 이상이었다. 0-2로 뒤지던 팀에 마지막 희망을 쏘아 올린 95분의 ‘극장 프리킥’이었다. 경기 전체가 끝나가는 시간에 모두가 포기하려던 순간에 쏘니의 승리에 대한 집념이 그라운드에 다시 불을 붙였다. 쏘니는 팀을 깨웠고, 객석을 흔들었고, 경기의 대본을 바꿨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전반전 0-2로 지던 경기를 쏘니는 후반 15분에 골문 앞에서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가며 3차례 연속 슈팅을 날려 만회골을 밀어 넣으며 팀을 하드 캐리했다. 탈락 확률 90% 이상을 예측했던 결과를 보란 듯이 뒤집고 연장전까지 끌고 간 경기였다. 볼리비아와의 A매치 득점 상황과 비슷한 위치에서 프리킥을 꽂아 넣으며 동점골을 기록하고 팀을 연장전까지 끌고 가면서 우리를 3시간째 TV 앞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후반 추가시간에 밴쿠버의 블랙먼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고, 연장 후반에는 교체로 들어온 할부니마저 부상으로 나가며 밴쿠버는 9명이 됐다. 11 대 9의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LAFC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다. 숨 막히는 순간이 이어졌다. 연장전 후반 13분부터는 중계화면까지 정지되었다. 오! 신이시여! 하필이면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중계화면 정지가 무슨 말인가. 의식의 회로는 순간적으로 음모론까지 닿았다가 급히 철회했다. 부랴부랴 네이버 스포츠의 문자중계를 열었다. 기어이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LAFC는 23일 오전 11시 30분 밴쿠버에 위치한 BC 플레이스에서 열리는 2025 메이저리그사커(MLS)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 경기에서 밴쿠버 화이트캡스와 2-2로 비겼다. 이후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 끝에 끝내 패했다. 이로써 LAFC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행이 좌절됐다. 멀티골 활약을 펼친 쏘니는 팀 패배에도 불구하고 양 팀 선수들 중 최고 평점을 받았다. 지난 8월 LA FC 이적 후 13경기에서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던가.
쏘니의 페널티킥 순간, 공은 정확히 골대를 향했고 골키퍼도 속였지만 오른쪽 포스트를 강하게 맞고 튕겨져 나왔다. 동시에 탄식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져 목구멍을 타고 터져 나왔다. 아들과 나는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공이 튀어나오자마자 쏘니는 고개를 숙였고, 순간적으로 손이 허벅지에 가는 걸 보니 햄스트링 경련을 느낀듯했다. 그렇게 한 시즌이 끝이 났다. 아쉬움과 허탈함으로 다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린 아들과 낮술을 기울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쏘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근육 경련이 왔었다고 고백했고, 연장 경기 동안 몸이 지친 상태였고, 그 충격이 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내 책임이다(all is on me)”라며 팀과 팬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였다. 실패 앞에서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쏘니의 용기 있는 모습에 또 한 번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함, 공동체를 위한 배려, 실패를 성찰의 기회로 삼는 쏘니의 리더십은 진정으로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쉬움은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걸 쏘니의 25년 마지막 경기를 보며 배운다.
2026년 2월 21일, 쏘니는 MLS의 개막전으로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리오넬 메시의 인터 마이애미와 빅매치를 갖는다. 아쉬움은 늘 다음을 기약한다. 나도 아들도 그라운드를 날아디니는 쏘니의 신나는 다음 시즌을 기대하며, 오늘의 쏘니가 진심으로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