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오버 해트트릭

by E Hana

쏘니의 25년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나는 지난 2년간의 아들의 ‘축구학원기(記)’를 떠올렸다.


2024년 3월부터 시작된 아들의 축구는 3개월이 지나도 즐거운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 워낙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겁도 많다 보니 공이 날아오면 눈을 질끈 감는다거나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오히려 피한다거나 십여 분 뛰다가는 힘들다며 인조잔디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말은 재밌다고 하는데 가끔 수업을 들여다보면 전혀 재밌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제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내 수업 시간표를 아들의 축구 시간표에 맞추어 바꾸었다.


아들의 축구 교실을 함께 다니며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들이나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축구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 얘기를 아들과 나누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6개월쯤 지나면서 차츰 공에 대한 집중력을 보이더니 매치데이 날에는 드디어 골을 넣기 시작했다. 골을 넣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날을 기념하는 가벼운 외식도 즐겼다. 사실 저녁밥 하기가 귀찮아 퇴근하는 당신을 불러내어 무거운 외식을 더 많이 즐겼다. (주방에서 나는 모두가 인정하는 건달이다) 축구 배워보자고 3개월을 넘게 아이를 설득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아들은 점점 축구에 빠져들었다.


내가 아는 축구는 팀워크와 책임감, 동료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규칙을 기본으로 하는 경쟁과 페어플레이, 건강한 땀에서 비롯한 성취감이었다. 다행히 아들은 훌륭한 코치님을 만나 내가 바란 축구의 장점들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건강한 유년 시절의 경험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기에 영어, 수학보다는 운동을 배우길 바랐다. 아들이 운동 중에 축구를 배운다면 나는 ‘성덕’이 되려나 생각했다.


운동 싫어하던 아들이 축구학원에 다닌 지 9개월이 지나니 이제는 축구가 제일 재밌다고 했다. 아들의 매치데이를 EPL(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이나 A매치(국가대표 공식경기) 보다 즐겼다. 드디어 나는 ‘성덕’을 이루었다! 아들과 수학 얘기 말고도 축구 얘기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 또래 친구들보다 단단한 허벅지를 가진 아들의 슈팅은 쏘니만큼이나 탄력 있고 힘이 넘쳤다.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미쿡 사회에서 말하는 사커 맘(soccer mom)은 절대 아니다. 다른 친구들이 영수학원 다니며 학원숙제에 코를 박고 있을 시간에 독서를 하라고 강조하긴 했다. 소위 사교육이라고 말하는 학교 밖 수업도 피아노와 축구 2개로 잠갔다. 우리 집의 고정비용과 생활비를 제외한 잉여자금으로 지출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학원 2개였다. 4학년이 되어서야 ‘사치를 부려’ 수영수업을 추가했지만 10개월 정도 배워 자유형과 배영에 익숙한 지금은 쉬고 있다. 그러니 사교육에 열성적인 극성 엄마도 못될뿐더러 요즘은 갱년기가 오는 탓인지 삶을 살아내는 에너지도 부족한 듯하다.


무수히 많은 맘(mom)들 중에 굳이 소속감을 느끼자면 베타 맘(beta mom)에 가깝다고 하겠다. ‘스스로 재능을 찾아라.’,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엄마에게 밥 먹듯이 듣고 사는 안쓰러운(?)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핑계로 엄마에게 자립성을 강요받고 있으니 말이다. 허허. 학교 끝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 가는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야 귀가하는, 시간이 제일 많은 우리 아들은 이 사실을 주변에 자랑하고 다니긴 하더라.


작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당신과 함께 아들의 축구 수업을 구경하러 갔더니, 그날은 아빠에게 보란 듯이 ‘오버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윤이는 오늘 1년 치 골 다 넣었네!’라는 코치님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골이 설령 10년 치여도 아들의 성장을 두 눈으로 경험한 부모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하루였다. 필드를 날아다니는 아들의 모습은 쏘니가 보여준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축구가 아들의 삶을 위로해 줄 것이다. 공터에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도 즐길 수 있는 게 축구 아니던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내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아이의 성실한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2년 동안 아들이 축구를 즐겁게, 성실하게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로서 매우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즐겨라!


넘치는 가능성으로,


네 삶은 온전히 너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