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비친 기억의 그림자

한 장의 사진이야기

by 이운덕

보스니아의 작은 도시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잔잔한 물살을 품고 있지만, 그 위에 겹처지는 기억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화려한 야경과 여행자의 발걸음 뒤에는 1990년대 내전의 흔적이 스며 있는 것이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슬픈 역사의 배경이 가진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가면과 기념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태어난 날은 달랐지만, 세상을 떠난 순간은 같았던 수많은 젊은 영혼들. 그들의 부재가 이 도시의 공기 속에 스며 있다.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과 반짝이는 색채 뒤에, 이곳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가 겹쳐 보였다.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여행이 단순히 낯선 도시 구경이 아닌, 살아 있는 기억을 만나는 길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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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 여행, 가면과 마주한 순간


시장 골목에서 마주한 가면들은 언뜻 보기에 축제와 환희를 상징하는 듯했다. 반짝이는 글리터, 깃털, 강렬한 색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반으로 갈라진 얼굴,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불균형에서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양가적인 감정을 읽게 되었다. 마치 상처를 덮기 위한 붕대처럼 반쪽만 웃고 있는 얼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무늬 등이 마치 살아남은 자와 떠나간 자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도시 입구에서 만난 돌로 만든 낡은 간판에는 ‘Don’t Forget’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안내판이 아니라, 스스로를 붙드는 다짐과 같았다. 잊지 않으려는, 잊을 수 없는 무게를 안고 있는 다리 위에 서면 물결은 고요하지만, 그 아래에는 멈춰버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온한 도시의 숨어있는 상흔 속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이 떠올라 묵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가면의 절반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이유가 여기에 닿아 있는 듯했다.



야경이 아름다운 모스타르 그리고, 상처들


해가 저물고 다리에 불빛이 켜지자,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낮 동안의 전쟁 흔적은 어둠에 가려지고, 물결은 금빛을 머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마저도 완전한 기쁨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가면처럼 화려한 겉모습과, 그 안에 감춰진 상처가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면은 결국 얼굴을 감추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면, 오히려 가면 속에서 진짜 얼굴이 보였다. 화려한 장식은 슬픔을 덮기 위한 장치였고, 균열 난 패턴은 치유되지 못한 상흔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려한 색채는 슬픔을 덮으려는 몸부림이었고, 균열 난 무늬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고백이었다. 여행은 이렇게 뜻하지 않게 마음을 흔든다. 기념품 가게 한쪽 벽에 걸린 가면조차, 잊지 못할 역사와 만나게 한다.

여행은 이렇게 의도치 않게 내 마음을 흔든다. 단순한 기념품 가게에서조차 도시의 역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기억은 때로 무겁지만, 잊지 않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태어난 시간은 달라도, 떠난 시간은 동일했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같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