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혜
벌써 4년이 지났다.
잡초가 많이 자라는 봄 이였던것 같다. 집옆의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데 여러 마리의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떠돌이로 보기에는 너무 작은 강아지가 보였다. 큰 들개 무리 속에서 멀찌감치 눈치를 보며 뒤따르던 강아지 한마리가 나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엉덩이 사이에 끼우고 몸을 땅에 기어서 가는 모습이 마치 작은 쥐 같았다. 큰 개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목적지를 모르는듯 주변을 배회 하며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눈치만 살피는 아이 같았다. 가끔씩 주변에 굶어 죽는 어린 강아지를 보곤 한다. 그럼 나는 묻어주곤 했다. 왜 사람들은 시골에 강아지를 버릴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다음날은 큰 들개들은 보이지 않고 작은 강아지 한마리가 혼자서 우리집 주변을 배회 하고 있었다.
우리집 강아지가 먹는 사료를 주었다. 어제처럼 꼬리를 엉덩이에 넣고 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가 없으면 밥을 먹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밥을 먹더니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와서 몸을 맡기었다. 자세히 보니 몸에 털이 없고 피부는 엉망인 노견처럼 보였다. 그나마 있는 털은 뒤엉켜 있어서 몸을 만지려는 순간 "깨갱 깽깽깽" 하며 엄살을 부려 만질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야 주은애!" 하니 왠걸 웃는다. 그날부터 '주은애' 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불리어졌다. 목줄은 할 수가 없었다. 피부 때문에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1년이 조금 넘은 듯한 강아지라고 했다. 그후 1년이 되어 가도록 약을 먹었지만 그 아이는 털도 피부도 좋아지지 않았다.
몸이 지저분하여 목욕을 해도 목욕한 티가 나지 않고 방에 두면 모든 물건을 망가뜨려 놓거나 대소변을 아무곳에나 싼다. 나는 강아지를 모른다. 그렇지만 꾸준히 그 아이와 우리집 강아지는 산책을 했다.
우리집 강아지는 목줄을 하지만 목줄없이 산책을 하는 '은애'는 앞장을 서서 산과 뜰로 뛰어 다니며 항상 활기차고 웃음이 많은 천방지축이다. 마을 사람들이 '은애'를 '바보'라고 하기도 한다. 강아지가 웃으면서 사람들의 말을 안듣고 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은애가 바보가 아님을 ...
왜냐면 은애는 밥값을 한다고 가만히 놀다가도 내가 오면 있지도 않은 외부인에게 짖는척 한다. 이제는 나를 만만히 보고 내가 앉아 있으면 손으로 툭툭쳐서 자신을 만져 달라고 품으로 쏙 파고든다. 우리집 강아지는 밥 투정을 한다. 은애는 그렇지 않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주은애' 는 "주은혜' 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