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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05. 2016

여름밤, 산책 나온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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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본디 외로운 것이다. 단 외로움에 짓눌려 현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면, 그것은 마음의 병이라 불러야 한다.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나의 근간을 뒤 흔드는 외로움이란. 호기롭게 찾아와 쓸쓸히 퇴장하는 짝사랑처럼, 일시적으로 느끼는 감정 따위가 아니다. 쇠심줄처럼 질긴 외로움과의 연은, 인연 또는 악연으로 딱 잘라 설명하기엔 모호하기만 하다. 형체가 없는 외로움은 혹여 부정적인 생각의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 낸 허상일까? 만약 허상이라면 귓가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의지한 채, 이 밤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때로는 나누고 싶다. 한아름 떠안고 사는 숱한 고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보고 들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빠르게 걷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 중에 그 누구라도. 하지만 넋 나간 나의 표정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내쉬는 한숨만이 외로움을 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듯 싶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기적인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누구보다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가까이 지내다보면 자신의 말과 행동만 옳다 강요하기 때문에 결국 상처를 주는 존재.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넌 줄곧 그래 왔다. 하필이면, 힘겨울 때 찾아와서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사라지다니. 가혹함을 떠올리기에 앞서 너로 인해 흔들리는 내가 가엾다.


역시 손님쯤으로 생각해야겠다. 다가오면 한 여름밤 불어오는 바람처럼 반기겠지만, 떠난다면 새 가을을 반기는 마음으로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도록.


문득, 어머니의 삶이 떠올랐다. 내 나이 즈음 임신을 하셨을 텐데,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불러오는 뱃속의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tv가 있고, 저녁 상엔 늘 생선구이가 차려져 있었다던 유년시절 어머니의 집. 그러나 결혼 후엔 대학생이 된 둘째 삼촌과 재수를 준비하던 막내 삼촌, 미혼의 고모, 모질게 굴던 시아버지 사이에서의 삶을 마주해야만 했다. 외로움을 숨길 수 있는 한 켠의 방이나 달랠 여유조차 없었던 그 시절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이겨내신 걸까. 알 순 없지만, 세 살이 된 누나의 손을 지긋이 잡고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눈은 아마 이러했겠지.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나는 여지껏 마음이 평온한 삶만을 건강하다고 믿었다. 긴장 없는 상태만이 제대로 살고 있단 증거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니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삶을 조금만 들춰보니 그 이유가 명백히 드러났다. 희생을 사랑이라 불렀던 나의 뒤에서, 묵묵히 견뎌 온 그 숭고한 시간.


이제는 알 수 있다. 외로움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만약 스스로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누군가의 사랑이 뒷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반대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외로움을 품고 살아간다는 진실을 기억하자.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에 비례해서 사라져 가는 자취를 따라가 보니, 이번에 찾아왔던 외로움의 이름은 '불안한 내일'이었다고 한다. 안개비를 장대비로 착각할 만큼 속절없이 흔들었던 너는 필요에 의해 태어났고, 변화를 갈망하는 나에 의해 떠난다. 저 멀리. 불안한 내일을 순간의 행복으로 노래하는, 나의 곁에서.


잘 가. 잊을라 하면 불현듯 찾아오겠지만. 더 이상 구구절절한 과거로 구속하지 말아주었으면 해.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장맛비가 내리고,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눈이 쌓이듯. 아무렇지 않게, 그냥 그렇게.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 저만치, 눈 앞에 깔린 불빛은 여느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하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걷는다. 저 앞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불안하지만, 알고 있다면 이렇게 나아갈 수 없겠지.


무더위 때문인지 유독 느린 걸음이지만, 구태여 보채지 않고 평안을 유지하며 걸으니 서서히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부디, 다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타나길 바라. 힘들었거든. 너와 만났던 그 어느 때보다 더.


매미의 울음, 그 저변에는 7년의 기다림이 있다. 우리에겐 한낱 소음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절실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대상을 나에게로 옮겨보자. 소음이라 치부했던 내 안의 소리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음이라면. 때때로 귀 기울여 볼만 하지 않을까.


삶의 유일한 대안은 '나'임을 깨닫는 이 시간, 스스럼없이 나에게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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