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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보다 더 어려운 건 나 자신이었다

<이민자의 배움 서사> 시리즈 4 (2)

by 이민자의 부엌

이민 온 지 20년. 나는 늘 “송이 엄마” 로만 불렸다.
아이들 이름은 또렷이 기억되는데, 정작 내 이름은 점점 희미해졌다.
집안의 중심축이면서도 나는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대체 누구지? 내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걸까.’
그 질문은 너무 아파서,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묻어뒀다.


그러던 어느 겨울 아침, 작은애가 대학에 들어간 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나… 다시 공부하고 싶어.”


스무 살도 더 어린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 앉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49년을 살았는데,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데도 숨이 차올랐다.
밤마다 찾아오는 목소리.
‘그냥 집에 가서 밥이나 하지. 이 나이에 무슨 창피한 짓이야.’


진짜 어려운 건 영어가 아니었다.
영어보다 훨씬 무서운 건, 나를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낮은 자존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리고 늘 따라다니던 독한 목소리.
“너는 안 돼.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해.”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가장 세게 때렸다.


그래서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섰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아. 단어 다섯 개만 외워도, 문장 한 줄만 읽어도 충분해.”
작은 성공마다 스스로를 토닥였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했지만, 내 안에서는 아주 작은 뿌리들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자라고 있었다.


칼리지에서의 마지막 학기,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던 날.
컴퓨터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견뎌낸 시간이 흘려준, 따뜻한 눈물이었다.


칼라지 졸업식 날. 무대 위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Honor Student, 경숙 킴”
49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이름만으로 불렸다.
그 짧은 말이 20년 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한꺼번에 비춰주는 큰 빛이 되었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했다. 여기까지 온 나, 정말 대견해.”


그날 이후로 두려움은 설렘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듬해, 나는 또 한 번의 문을 열었다. 4년제 대학.
이번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미 나는 나를 이길 수 있다는 걸,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칼리지 졸업장을 손에 쥔 날, 비로소 깨달았다.
이 모든 여정은 학위 때문이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나를, 끝내 찾아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스스로 가능성을 줄인다.
“이 나이에 뭘…” “이제 늦었어.”
그 말들이 나를 묶었던 족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족쇄를 부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건, 나를 믿는 용기였다.


지금 이 순간, 캐나다의 겨울 햇살이 창밖으로 따스하게 쏟아진다.
붉게 물들었던 단풍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그래도 나는 따뜻하다.
왜냐하면, 영어보다 어려웠던 나 자신을 끝까지 이겨낸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여러분은 지금 어떤 ‘내 안의 나’ 와 싸우고 계신가요?
그 싸움도, 천천히, 한 걸음씩, 언젠가 분명 빛이 될 겁니다.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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