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배움 서사> 시리즈 4 (8)
등교 준비로 분주하던 2020년 3월의 어느 아침,
영국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보다 빠른 호흡, 떨리는 목소리였다.
“엄마… 요즘 뉴스 안 봤어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요.
그래서 중국, 한국은 난리났어요.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위험해요.
제발 당분간 학교 가지 마세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한, 대구, 이탈리아… 뉴스는 이미 폭풍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되뇌었다.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내가 걸릴 리는…’
그건 두려움을 모른 척하고 싶은, 아주 작은 자기방어였다.
그날 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교수님들에게 메일을 썼다.
“제가 나이가 많아 면역력이 약하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니
교실 수업이 너무 두렵습니다. 강의 자료만이라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한 분의 교수님만 “도와드리겠다”고 답했고,
세 분의 답장은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학교 공식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출석 필수입니다.”
나는 딸이 걱정하는 ‘엄마’ 이면서,
동시에 출석을 지켜야 하는 ‘학생’ 이기도 했다.
두 세계 사이에서 마음은 서서히 갈라졌다.
다음 날 아침, 결국 나는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조심스레 마스크를 꺼내 쓰자
몇몇 눈길이 비수처럼 꽂혔다.
‘중국 아시아 아줌마가 왜 저러나’ 하는 차가운 시선.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마스크를 벗었다.
그 순간, 두려움보다 더 큰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날, 모든 것이 멈췄다.
수업이 한창이던 그때, 스피커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모든 학생은 즉시 귀가하십시오.”
교실은 혼란에 잠겼다.
교수님도, 학생들도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부스럭… 찌이익~~ 탁, 탁—
가방 지퍼 닫히는 소리만 교실을 채웠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무섭고, 슬펐다.
그날 이후 캠퍼스는 문을 닫았고,
시계는 그 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이제 강의실은 화면 속 작은 네모였다.
인터넷은 자주 끊기고, 교수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갈라졌으며,
학생들의 얼굴은 한 뼘 크기의 창 속에서
표정도, 숨결도 사라졌다.
“지금… 들리세요?”
그 한 문장이 하루의 절반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헤드폰을 벗었다 끼었다 반복했다.
교실의 따뜻한 공기, 친구들이 건네던 커피,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함께 웃던 순간들이
물속에서 본 것처럼,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가끔은 화면을 끄고 울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대학 생활이었나…’
50대에 다시 시작한 배움의 길이 이렇게 멈춰버릴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채팅창에 남기던 “오늘도 화이팅!”,
브레이크아웃 룸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던 작은 목소리들,
과제 마감 전날 새벽까지 불타오르던 단체 카톡방.
비록 화면 너머였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꽉 붙잡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텅 빈 복도, 멈춰 선 시계,
창밖으로 쏟아지던 차갑고 하얀 햇살,
그리고 마스크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던 조용한 눈빛들.
그 눈빛은 지금도 속삭인다.
“너는 혼자가 아니었어.”
여러분은 인생에서,
세상이 갑자기 멈춰버린 순간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그 멈춤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은 없나요?
하지만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이 멈춘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고,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