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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에서 울린 사랑의 괴성

<이민자의 배움 서사> 시리즈 4 (9)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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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왔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 졸업 가운을 입는 날이자,
내 인생에서 세 번째 졸업식이었다.


아침부터 손이 떨렸다.
평소라면 절대 바르지 않았을 연한 핑크 립스틱을 꾹꾹 눌러 바르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차분히 말렸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하늘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거울 속 여자가 낯설었다.
그 낯섦이 ‘새로 태어난 나’ 처럼 느껴졌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20년 전을 떠올렸다.
이민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던 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며 울던 밤들,
새벽까지 책상에 엎드려 눈물로 교재를 적시던 순간들…
그 모든 날을 견딘 내가 오늘, 여기까지 왔다.


식장에 들어서며 학사모를 살짝 눌러썼다.
그날 나는 한 분을 특별히 모셨다.
혈연은 아니지만, 캐나다에 와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우리 딸, 잘하고 있어”라는 말로 나를 안아주신
작은 체구의 고모님.
이분은 이곳에 뿌리 내리신 지 40년이 넘었다.
이 먼 땅에서 친지,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는 데,
그분이 내 곁에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내 지난 시간이 증인을 하나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졸업생들이 하나 둘 입장하고,
식장은 엄청난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크에서 내 이름이 울렸다.


“경숙 킴”


그 순간, 식장 한쪽에서 천둥 같은 괴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정적과 함께 모두가 놀라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우뢰와 같은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뒤를 이었다.
나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그분이 서 계셨다.
키 150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의 작은 고모님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작은 몸에서 나올 수 없는 거대한 사랑의 울림이었다.


순간 눈물이 터졌다.
눈앞이 하얘졌다.
그 괴성은 내가 걸어온 모든 고난과 눈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한 번에 안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포옹 같았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며, 위에서 고개를 돌려 그분을 바라보았다.
거리감 때문에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흔들고 계신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 생각 하나로 목이 메었다.


총장님이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과 악수를 건넸다.
내 차례가 되자, 총장님은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I see your mother is here. Congratulations again.”


그리고 따뜻한 말을 덧붙이셨다.
그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따뜻하게 울렸다.


졸업식장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도전과 실패, 불안과 외로움
한꺼번에 몰려온 순간이었다.
첫 번째 졸업식에서 느낀 설렘과는 다른,
삶이 주는 무게와 그 무게를 견디며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울림이었다.


졸업식 내내 나는 고모님을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진심 어린 응원과 사랑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 길을 걸어온 이유,
내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그날 이후로도 그 괴성은 내 귀에 계속 울린다.
조용한 밤, 힘들 때,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가끔씩 그 소리가 들려온다.


“너 정말 잘했어.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그날의 환호는 내 인생에서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다.
내가 세상에 남긴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졸업식은 끝났지만,
그날 느낀 감정과 울림은 지금도 살아 있다.
어떤 날에는 내가 지쳐 무너지려 할 때도,
그 괴성이 내 안에서 울리며 나를 일으킨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있는 힘껏 불러준 순간이 있나요?
그 한 번의 괴성, 그 한 번의 울림이
평생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는 걸,
저는 그날 졸업식장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그 소리를 기억하며 말한다.


“나는 충분히 잘했어. 나는 여기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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