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시선, 세계의 흐름> 시리즈 5(1)
한때 세계의 중심에 서 있던 미국.
그 이름만으로도 안정과 리더십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은 깊은 균열을 겪었고
국제 무대에서의 신뢰는 바람처럼 흩어졌다.
캐나다 시민으로서 나는 이 변화를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건 단순한 정치적 소용돌이가 아니다.
세계 질서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미국 항소법원의 판결은 그 흐름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을 근거로 시행했던 상호관세 조치가
위법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미국 법원조차 보호무역의 칼날이 법적 테두리를 벗어났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 관세 폭풍 속에서 얼마나 많은 동맹국들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는가.
캐나다의 작은 마트 주인부터 대형 제조업체까지—
특히 미국과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경제적으로도 깊이 얽혀 있는 캐나다가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공급망은 흔들리고, 가격은 치솟았으며, 사람들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되었다.
숫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 여파는 결국 우리 삶 곳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난다.
세계 무역의 기반이 흔들릴 때, 그 불안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캐나다에서 살아가며 깨달은 것이 있다.
정치는 결코 시민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총리의 작은 윤리적 실수만으로도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다.
도덕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성과나 ‘우리 편’이라는 정체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트럼프의 재선 지지가 그 극명한 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다.
시민의식이 국가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같은 북미 대륙에 살면서도 이렇게 다른 길을 걷는 두 나라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더 많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국제 정세에 따라 변동되긴 하지만, 미국 달러의 위상 역시 예전만 같지 않다.
정치적 혼란, 끝없는 재정 적자, 금리 정책의 혼돈은 그 뿌리를 흔들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로화의 국제화, 위안화의 부상, 그리고 다극화된 금융 질서가 그 증거다.
EU는 기후 정책과 디지털 유로를 내세워 새로운 목소리를 키우고,
아시아는 기술과 제조의 힘으로 자신만의 중심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도,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
이제 이들은 미국의 그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질수록, 그 빈자리를 채우는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나는 미국의 쇠퇴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미국을 꿈꾼다.
책임을 지고, 도덕을 기반으로 하며, 진정한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아직 그 기대에 닿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이제 한 나라가 모든 것을 지휘하는 시대를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다극적 질서가 혼란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변화가 두려운가?
아니, 어쩌면 인류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민자로 살아온 나는 언제나 경계 위에 선 존재다.
한국의 뿌리와 캐나다의 가지 사이를 건너며
한 나라의 이익을 넘어 더 넓은 흐름을 바라보려 애쓴다.
국경을 넘어 살아온 세월이 내게 가르쳐준 건 단 하나다.
진짜 힘은 지배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그 신뢰가 무너진다면,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홀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이 새로운 질서가 더 정의롭고, 더 따뜻한 미래로 이어지기를.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책임과 희망을 함께 품어야 한다.
당신의 시선도, 나와 함께 이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