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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국경 너머, 내가 선택한 삶

<이민자의 시선, 세계의 흐름> 시리즈 5(2)

by 이민자의 부엌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0일 오전 07_20_31.png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어난 뉴스는 내 마음을 깊숙이 흔들어 놓았다.
현대차와 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숙련공 300여 명이 한꺼번에 연행됐다는 소식이었다.
합법적인 비자로 들어왔음에도, 그들에게 붙은 꼬리표는 “불법 취업”이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숨이 막혔다.
“만약 그 안에 내 남편이 있었다면?”
머릿속에서 그 한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남편은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일했고, 캐나다 이민 후로도 26년째 같은 분야에서 묵묵히 일해온 사람이다.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고,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
남편은 늘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만 가르쳐도 열을 알아. 해야 할 땐 자기 몫 이상을 해.”


나는 그 말이 단순한 자부심이 아님을 안다.
한국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들은 자기 분야를 평생 업으로 삼고, 맡은 일은 어떻게든 완성한다.
하지만 그 성실함이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불법’으로 뒤집히는 현실이 있다.


사실 미국은 지금 숙련공이 절실하다.
국내 인력만으로는 공장을 짓고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교육을 해도 금세 떠나고, 이직률은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그래서 기업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오는 일.
오랫동안 이어져온 관행이었고, 모두가 알고 있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관행이 뒤집혔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갑을 찼다.


사건 직후, 남편 회사에도 공문이 내려왔다.


“가능하면 미국 출장 자제.”


우리는 예정된 LA 출장을 바로 취소했다.
항공권, 호텔, 렌트카를 하나씩 지우며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스르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만약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마음을 건드렸다.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마다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내려앉곤 했다.
예전에는 캐나다 여권만 보여도 대부분 문제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적 하나, 직업 하나, 입국 목적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시대.


이민자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얇은 선 위에 서 있는 일인지 모른다.


조지아에서 연행된 300명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녀 학비를 위해,
누군가는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누군가는 단순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미국 땅을 밟았을 것이다.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닦은 전문가였을 텐데,
하루아침에 범죄자 취급을 받고 수갑을 찼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니다.
미국의 산업 구조와 이민 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다.
기업은 숙련공을 원하고, 정책은 그들을 범죄자로 만든다.
그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들어온 사람들조차 위협에 노출된다면,
앞으로 누가 기꺼이 미국으로 가서 일하려 하겠는가.


나는 캐나다에 뿌리를 내린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국경 너머 사건 하나가 여전히 내 하루를 흔든다.
왜냐하면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국경 바로 옆’에 세워진 삶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조용하지만, 또 어떤 날은 바람이 갑자기 바뀐다.
그리고 그 바람은 가장 약한 곳부터 흔들기 시작한다.


조지아의 차가운 새벽, 철컥 소리와 수갑의 무게
지금도 내 귀에 맴돌고,
우리 가족의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긁는다.


이건 한 기업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한 지역 경찰의 과잉 단속도 아니다.
미국이 자국 이익 중심으로 재편하는 정책이 글로벌 협력과 신뢰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다.


그 신호는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우리 같은 이민자의 마음 속에서 울린다.


세상은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국경 너머 사정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불안과 떨림 속에서도
나는 한 가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이민자로 산다는 건 불안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일이지만,
그래도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사실.


그 진실 하나는 흔들림 속에서도
묵묵히, 단단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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